올레7코스를 걷다 2
Posted 2011. 11. 5.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돌이다. 해변은 물론이고 어디를 가든 높이가 1m 남짓 되는 돌담들이 숭숭 구멍이 뚫린 채로 서 있다. 구멍을 막지 않는 게 오히려 해풍에 잘 견디게 하는 거라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났다.
제주도는 무덤 주위에도 사각형의 돌담을 쌓는다. 귤밭 한 구석에 무덤이 있는 걸로 봐서 무덤의 주인은 평생 귤 농사를 지었을 것 같다. 무덤은 보통은 집에서 먼 데 있게 마련인데 자신이 가꾸던 귤밭 가운데 제법 넓은 땅에 묻혀 있으니, 훨씬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풍습처럼 보여 흥미로웠다.
이번 여행에선 귤밭을 많이 봤다. 귤 나무는 길을 걷다가도 손만 뻗으면 닿을 만치 가까이 있고 키가 그리 크지 않았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따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귤 따는 아르바이트도 있는데, 하루 일당이 6만원이라고 한다. 젊은이들 같으면 워킹 홀리데이 식으로 일하면서 벌어 여행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크기별로 분류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귤 상자들이 쌓여 있다. 둘째날 오후엔 난생 처음 귤 따는 체험을 했는데, 당연히 대여섯 개는 바로 먹었다. 음~ 제주도에서 바로 따서 먹는 귤맛은 도시에서 사 먹는 것과는 유가 달랐다. 맛과 향에서 비교가 안 됐다.
산에 다니다 보면 햇볕 잘 들고 전망 좋은 소위 명당 자리에 있는 무덤을 많이 보는데, 제주에선 바닷가가 바로 명당이었다. 무덤을 두른 낮은 돌담이 주위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풍경이 되면서 살아 걷는 이들과 조우하는 게 별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식물원 온실에서나 보는 선인장도 야생에서 자라고 있었다. 꽃이 활짝 핀 선인장은 오랜만에 본다. 데낄라의 원료가 된다는 용설란도 두어 군데서 볼 수 있었다. 2007년 LA 헌팅턴 가든에서 본 수백 종의 선인장 가운데서도 용설란은 크기나 모양새에서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사진 속에 들어가는 게 꺼려질 때가 많다. 주위 풍경이나 배경을 오히려 압도하거나 적어도 위축되지 않을 정도의 청춘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용설란 앞에선 많이 커버될 것 같아 특유의 팔짱낀 포즈를 취해 봤다. 모자를 쓰고 있어 다행이다.^^
노지(露地)에 파인애플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다른 열대 나무들에 비해 키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50cm쯤 되어 보였다. 저 이파리들을 자르거나 쳐낸 다음 땅속에서 자라 누렇게 익은 파인애플을 뽑을 것이다. 마트에서 파는 태국, 필리핀에서 수입된 것들만 먹었는데, 제주 산 파인애플을 한 번 먹어본다는 걸 깜빡하고 그냥 왔다.
제주의 파도 치는 해변 바위틈새엔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식물이 바닷 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렇게 길가의 큰 바위 틈새에서 자라는 소국은 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누가 심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바람에 날려와 자리 잡은 것일 게다.
7코스를 걷는 동안 빨간 색 꽃인지 열매인지 분간이 잘 안 되지만 화사하게 피어 난 나무가 여러 번 눈에 띄었는데, 풍림리조트 앞에서 그 나무 이름이 파라칸티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게 큰 건 마치 방울토마토처럼 보이기도 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새총 같이 생긴 나무가 보여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올레7코스는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도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보여주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는데 왜 이제야 왔느냐고 살짝 삐친 것 같기도 하지만, 이내 그 넉넉하고 다채로운 속살을 드러내 주었다. 올레를 걷는 이들은 누구나 나처럼 황홀한 충만을 맛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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