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귀국길
Posted 2012. 9. 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OSTA USA태평양은 어디서 건너든 기본 10시간은 잡아야 한다. 갈 때나 올 때나 만만치 않은 거리라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눈을 붙였다 할 수 있는 별의 별 수단을 강구하지만, 꼭 중간에 두어 시간은 삭신이 나른해지면서 이것도 저것도 하기 귀찮아지는 순간이 찾아 온다.
이럴 때 내가 주로 하는 건, 물 한 잔 시켜 마신 다음에 비행기 운항정보를 구경하는 거다. 지금 어디쯤을, 고도 얼마의 상공을 날고 있는지, 속도와 바깥 온도는 어떤지, 출발지와 도착지 시간은 어찌 되는지 등을 개인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이 날아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겨우 여기까지밖에 안 왔군, 할 때가 많다.
도쿄까진 두 시간 정도 남았던 새벽 3시 15분이 미국은 대낮이다. LA에서 자정을 지나 1시 10분에 타서 8시간쯤 날아왔는데도 여기 시간은 겨우 2시간이 지난 걸로 돼 있다. 밤낮이 확연하게 바뀌는 시차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물론 날짜와 요일도 하루를 더해야 한다. 도쿄에 내려서도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지만, 그래도 출국편보다는 귀국편이라 한결 기분이 낫다.
이럴 때 또 하나 해 보는 게 셀카 놀이다. 비행정보를 보던 모니터를 끄면 창은 피곤한 내 얼굴을 비춰 준다. 3열 좌석의 창 쪽 승객은 뒤척이다가 담요를 뒤집어쓰고는 깊은 잠에 빠졌고. 가운데 좌석은 비어 있어 복도 쪽에 앉은 나는 거의 방해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조건이다.
모니터에 얼굴 전체가 나오게 하는 건 셀카 각도상 쉽지 않다. 설사 가능하다 해도 비행에 찌든 피곤한 몰골을 굳이 담을 필요는 없기에 반쯤 나온 어색한 표정과 자세들이 찍힌다. LCD창을 보며 찍는 사진이 아니기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려면 여러 번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찍어봐야 한다. 결국 좋은 사진은 못 건졌다.
5시에 도쿄에 내려 8시 50분에 출발해 11시 반에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다시 세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경유 비행편치고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스케줄이다. 밤 늦게 도착해 피곤에 찌든 귀가를 면할 수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에 내리는 거라 집에 가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하네다 공항의 거의 모든 비행편은 기본 두 개 또는 세 개의 공동운항편들로 승객들을 모아 나르고 있었다.
하네다의 새벽 시간을 어찌 보내나 하던 차에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누구지? 이 시간에 이런 데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사랑의교회 대학부 디렉터로 있다가 지금은 작은 교회를 개척한 이남정 목사였다. 한 2-3년 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다. LA를 다녀오는 길에 같은 비행기를 탄 건데, 이제야 서로 알아보는 거다.
그때 쓰던 PP 카드가 있다며 라운지에 들어가잔다. 시장하진 않았지만 간단한 음식을 집어와 이른 아침을 했다. 튀김이 들어간 뜨근한 우동 국물이 맑고 달았다. 이 목사가 있을 때 대학부 큐티를 우리 큐티진을 그대로 쓰면서, 매거진 기사 32면과 표지 컬러면 파일을 대학부 편집팀이 모아 오면 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사랑의교회 대학부에서만 쓰는 맞춤큐티로 제작해 보급했었다. 적을 땐 1,800부에서 많을 땐 2,500부까지 찍었다. 지구촌교회 청년부, 노량진 강남교회 청년부 등도 이렇게 하다가 지금은 다른 교회들이 하고 있다.
쥬스와 하겐다즈도 가져와 먹으면서 한 시간 반 정도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헤어졌다. 덕분에 자칫 지루했을 대기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온통 미국 비행기들만 보이던 미국 공항들과는 달리 아샤나도 보이고 내가 타고 갈 ANA도 창밖에 기다리고 있다. 비가 왔었는지 바깥은 물기가 조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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