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여행7 - 추억 뭉클 드라마 촬영장
Posted 2016. 12. 12.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갈대밭과 낙안읍성만 찜해 두고 나머지 일정은 가서 동선에 따라 정하기로 했는데, 둘째날 오전에 간 곳은 드라마 촬영장이다. 특히 아내가 가고 싶어 했는데, 별 거 있겠나 하고 가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대략 1950년대에서 70년대 거리와 상점들이 재현돼 있어서 가물가물 추억이 뭉클거렸다. 간판에 걸린 가게 이름들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그 시대 그 시절 표어와 문구들을 살펴보느라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좀 걸렸다.
중국집과 백반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미닫이 유리문 가득 써 놓은 메뉴는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었고, 두 자리 국번의 쌀집 전화번호도 오랜만에 봤다. 관공서도 아닌데, 중국집 2층 담벽에 붙여 놓은 "반공방첩"은 분단국가의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국민학교 다닐 때 포스터 과제도 저 문구일 때가 많았다. 가게앞의 개량 아궁이 위로 커다란 가마솥에선 얼마나 맛있는 국이 끓고 있었을까.
요즘은 웬만해선 옷을 맞춰 입지 않고 대충 사이즈에 맞는 옷을 사 입지만, 옛날엔 여성복이나 신사복을 거의 맞춰 입었다. 나도 서울올림픽 전 해에 결혼식 때 입을 양복을 맞추기 위해 소공동에 갔던 기억이 난다. 봉화 양장점이란 우리말 상호는 지극히 촌스럽지만, 그 밑에 영어로 써 놓은 부띠끄는 세련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구두 가게도 보이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다방은 2층으로 돼 있어 들락거리는 이들이 꽤 많았다는 걸 보여준다.
TV도 없던 시절, 유일한 오락거리는 극장이었는데 주위 건물들과는 다른 외양을 자랑하는 극장 건물이 보였다. 물론 내부는 요즘과 같은 계단식에 쿠션 좋은 팔걸이 좌석이 아니라, 평평한 바닥에 등받이도 없는 시골교회 장의자 비스므리한 시설이었지만, 낭만 만큼은 요즘에 비할 게 아니었다. 상징적으로 걸린 상영 프로는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이었는데, 1964년작이니 막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의 나도 못 본 영화였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태평극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헐리고 제일기획이 들어서 있다.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면 남영동이 나오는데 길 양쪽으로 성남극장과 금성극장이 있었다. 내 기억 속 첫 극장은 지금은 서울시의회가 들어선 옛 시민회관이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 손을 잡고 간 기억이 나는데, 영화는 아니고 무슨 쇼 프로였던 것 같은데, 코흘리개 꼬맹이는 내내 단잠을 잤다.^^
시계 가게를 겸한 안경점과 이발관 그리고 팝송이 흘러나오는 고고장 등 그 시대 그 시절의 아스라한 정경을 추억케 하는 드라마 세트장을 거닐 수 있어 행복했다. 이 거리는 남녀 고교생 교복이나 교련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닐 수도 있는데. 마침 40대로 보이는 교복 입은 중년 두 커플이 서로의 모습에 환한 웃음을 터드리고 있었다. 동네 중심에 세워 놓은 반공방첩 시설물의 오른쪽 표어가 요즘 우리나라 정세와 비슷해 쓴웃음이 나왔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은 이 거리를 지나 언덕배기에 6. 70년대 달동네 풍경을 역시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만드는데,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아본 나같은 세대에겐 거기도 볼 게 많고, 그 골목여행도 즐겁기 그지없었다. 사진을 수십 장 찍었는데, 아쉽게도 iPhoto에 옮겨둔 그 사진들만 이상하게 몽땅 사라져 따로 포스팅을 할 순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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