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간판
Posted 2012. 11. 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인사동에서 낙원동 나오는 길에 오래 전부터 있었을 법한 미술 점포가 있는데, 갤러리는
아니고 골동품 파는 집이다. 한자 예서체로 멋지게 쓴 고풍스런 간판은 많이 낡았는데, 얼마나
오래됐는지 첫 자가 뜯겨져 떨어져 나가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바탕 나무판이 보일 정도였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상호였지만^^, 규모로나 분위기로나 가게 앞에 늘어놓은
돌덩어리들을 봐서나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물론 간판이나 가게 외양만 보고선 이 가게의 실제 형편이 어떤지, 내실이 있는 곳인지
아닌지 알 도리는 없다. 간판은 이래도 오랜 단골들의 사랑을 받는 제법 알찬 곳일 수도 있고,
미술계가 그렇듯이 한두 건의 큰 거래로 한 달 장사를 너끈히 하는 실력 있는 집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 반대로 한때 잘 나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낡은 간판에서 보이는 조금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경기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이삼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간판을 내리고 주변에서 남들 하는대로 현대식으로
번듯하게 꾸밀 법도 하지만, 외양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실속 있는 주인은 어쩌면 이 문화의
거리에선 빠르고 쉬운 변화보다 이렇게 낡고 오래된 것을 그대로 놔둠으로써 고풍스런 골목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변 분위기는 이삼십 년과 달라졌어도
굳굳이 자기 갈 길을 가는 고집과 뚝심이 결국엔 문화를 만드는 법이니까.
'I'm wandering >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치마도 있었군 (2) | 2012.11.13 |
---|---|
Future Green City (2) | 2012.11.09 |
행복은 ...... (6) | 2012.10.23 |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 (2) | 2012.10.10 |
다시 무대에 선 로즈마리 (6) | 2012.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