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Posted 2014. 3. 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인사동을 빠져나와 안국역에서 길을 건너면 풍문여고와 덕성여고가 있는 안국동 골목이 나오고, 좀 더 가면 정독도서관과 삼청동으로 이어진다. 이 길도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 큰길 못지 않개 삼청동을 찾는 이들이 많이 다니는데, 한쪽에 그려진 인상적인 벽화가 시선을 끈다.
팔십은 족히 된 듯한 부부로 보이는 백발의 남녀가 그윽한 표정으로 입을 맞추고 있는 이 일대에서 유명한 그림이다. 회색톤의 그림도 아름답지만, 이 그림을 더 돋보이게 만든 건 옆에 새겨넣은 WE ARE YOUNG이란 문구다. 우리 화가가 그린 건지, 아니면 다른 데 있는 걸 카피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호젓하고 한가한 날에 들렸다면 벽화만 온전히 담을 수 있고,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면서 감상할 수 있고,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이 스쳐가는 장면 등 약간은 연출된 사진을 다양하게 찍을 수 있었겠지만, 주말 오후 지나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조금 기다렸다가 겨우 건진 사진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 가리워진 사진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런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첫 사진에 잡힌 비교적 젊은 친구들은 이 그림을 신기해 하면서도 자신들의 걸음 속도에 맞춰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세상엔 재밌고 신기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아랫 사진처럼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춘 이들은 친구처럼 보이는 중년 주부 둘이었다. 이 그림은 이들처럼 나이와 용기로 읽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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