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돔 등정기 1 -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봉우리
Posted 2014. 8. 1.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ild Yosemite
하프돔(8,842ft 2,695m)은 위험한 봉우리다. 하프돔을 걸어 올라가려면 그 앞에 있는 서브돔부터 올라야 하는데, 말이 서브(Sub)지 여기도 만만치 않다. 번개 치고 폭풍우가 몰아칠 땐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서브돔부터 하프돔까진 비와 번개를 피할 데가 없고,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하프돔을 오르내릴 때나 정상에서 추락하거나 낙뢰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도전하기도 전에 하프돔 안내판은 잔뜩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 우린 하프돔에 두 번 도전했는데, 선라이즈 캠프에서 출발해 리틀 요세미트 밸리 캠프까지 걸은 둘째날 하프돔을 2마일(3.2km) 남겨둔 갈림길(Junction)에서 점심을 먹고 다들 체력이 남아 있길래 도.전!을 시도했다. 10분 정도 올라갔을까, 국립공원 직원 격인 레인저(Ranger) - 당연히 여자들도 있다^^ - 와 마주쳤고, 하루 300명에게만 제한 발급하는 사전 등반허가증(Permit)을 아이패드로 대조 확인하더니만, 오후에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올 거란 예보가 있으니 올라가지 않는 게 좋겠단 진지하면서도 단호한 조언을 들려주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리고 한국 사람들답게^^ 악으로 깡으로 강행할 수도 있었지만, 여긴 그런 게 안 통하는 미국땅.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돌아가냐며 허세와 만용을 부리거나 우리가 오를 땐 날씨가 좋을 거라며 요행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요세미티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인 레인저 말을 듣는 게 건강에 좋다.^^ 때론 과감하게 포기하고 기꺼이 발길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원래 오르기로 했던 내일이 남아 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고, 리틀 요세미트 밸리 캠프로 내려가 캠프장에서 몇 분 안 걸리는 경치 좋은 강에서 놀다가 일찍 자고 내일 새벽 서너 시에 등반을 시도하자는 예상치 못했던 묘안이 나왔고, 물병과 간식 정도만 배낭에 남기고 나머지 짐은 텐트 구석에 꺼내놓고 잠을 청했다. 노인도 아닌데 3시 전부터 부시럭거리는 토니 덕에 3시에 눈을 뜨고, 드디어 3시 반에 하프돔 장정에 나섰다.
칠흑 같이 어둡고 약간 선선한 날씨에 긴팔옷을 입고 요세미티의 밤공기를 맛보며 발걸음을 뗄 때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 뜻밖에 찾아온 새벽산행의 즐거움과 흥분을 나누기에 바빴고, 중간중간 걸음을 멈추고 헤드 랜턴을 끄고서 하나-둘-셋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봤을 때 쏟아질 것만 같은 요세미티 하늘의 그 수많은 별이 그려내는 그 고요하고 은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날이 밝기 시작하고 높이가 확보되면서 우리가 지나온 길 너머로 요세미티의 능선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1차 관문격인 서브돔 아래에 이르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가면 하프돔 케이블을 붙잡고 오를 때쯤 등으로 저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낭만적인 생각이 들었다.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잘 지은 서브돔(Subdome)은 돌계단과 바위를 몇 번 커브를 돌며 올라야 하는 만만치 않은 헐떡 고개였다. 서브돔 오르는 길은 주위 풍경만 다를 뿐 우리네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하프돔의 케이블 붙잡고 오르는 길이 어떨진 몰라도 이 정도면 제법 등산하는 재미^^가 있다. 등반대장 토니는 오늘도 앞서가면서 뒤를 따르는 우리를 아이폰 동영상에 담았다.
후미(後尾)에 서길 좋아하는 원정대장 Shiker님이 힘든 표정으로 모자까지 벗어 재끼고 폴대를 한 일 자로 부여잡고 타박타박 우리 뒤를 따르면서 우리 둘만 하프돔에 올라가라고, 자긴 서브돔에서 폴대 지키고 있겠다고 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잠시 후 깜찍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당사자를 비롯해 아무도 상상 못했다.
3시 반에 캠프를 출발해 하프돔 아래 서브돔 위에 오르니 6시 반이 됐다. 워낙 일찍 출발해 올라오는 동안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야 밸리에서 출발했다는 팀을 봤는데, 서브돔 위 바위엔 커플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나란히 앉아 하프돔의 위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포즈로 봐선 올라갈 것 같진 않고 그냥 하프돔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른 시간대여서인지 평소 개미같이 새까맣게 매달려 올라간다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올라가야 할 때다. 언제까지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다. 심호흡을 하면서 올라갈 준비를 했다. 가볍게 챙긴 배낭은 그냥 메고 가기로 했고, 폴대는 아래에 두고, 앞서 하프돔을 올랐던 이들이 두고 간 장갑더미에서 각자 적당한 걸 골라 끼고 마음을 다잡았다.
알피니스트 토니야 알아서 할 테고^^, 상념에 젖은 듯한 Shiker님,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바라만 보고 안 올라가면 서운할 텐데요,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작 무지막지한 급경사와 백 미터는 족히 넘어보이는 케이블 길이를 보니 와락 떨리고 긴장이 되는 건 나였다. 말로 듣던 것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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