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돔 등정기 2 - 아슬아슬 아찔아찔
Posted 2014. 8. 2.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ild Yosemite
하프돔을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암벽 등반을 하거나 서브돔으로 올라와서 경사각이 45도에서 60도에 이르는 동쪽 사면(斜面)에 설치된 케이블을 붙잡고 120m를 낑낑대면서 올라갔다가 같은 방법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1875년에 조지 앤더슨이 로프와 볼트를 이용해 초등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후 1919년에 시에라 클럽이 처음으로 케이블 루트를 설치했다(겨울철엔 안전을 위해 케이블을 제거한다).
말로만 듣던 하프돔 앞에 서서 그 당당하고 아득해 보이는 암벽과 케이블을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니 괜히 왔단 생각이 몰려온다. 아놔~, 이거 여기서 쪽 팔리게 안 올라간다고 할 수도 없고,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니 끝까지 쩔쩔매며 올라가든 떨어지든 일단 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몇 걸음 위로 옮기는 건 물론이고, 장갑을 꼈는데도 미끌거리는 케이블을 붙잡고 있기도 벅찼다. 한국에서 빨간 막장갑을 가져오는 건데, 막판에 챙겨오지 않은 걸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밑에서 골라 낀 장갑은 일단 커서 안에서 손이 노는 느낌이었고, 케이블을 잡을 때도 꽉 잡히질 않고 미끌거려 몇 번째 발판에선간 급기야 한 손이 겉돌아 휘청거리면서 겨우 다른 손에 의지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떨어지지 않았다.
몇 미터 간격을 두고 따라오면서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던 토니도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급격하고 강력한 공포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체면이고 가오고 뭐고 당장 되돌아 내려가고 싶었다. 으~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못 올라가겠다면서 힘들어 하던 Shiker님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맨앞에서 성큼성큼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뭬야 이거! 여태 뻥이었나? 아니면 막판 대반전?
간신히 줄을 붙잡고 다시 심호흡을 몇 번 하고선 일단 다음 나무 발판까지만 2-3m 전진하는 걸 목표로 삼고, 이걸 서너 차례 반복하니 조금씩 해볼만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얼만큼 올라왔는지 내려다 보고도 싶고, 얼마나 남았는지 올려다 보고도 싶었지만, 그랬다간 다리가 더 후들거릴 것 같아 그저 처음 등산할 때처럼 바로 아래만 보고 올라갔다.
얼마나 걸렸을까. 셋이 다 올라오니 7시였다. 서브돔에서 하프돔 오르는 데 30분이 걸린 셈이다. 만세!가 절로 나오고, 서로 하이파이브 하며 격려하는 건 자동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쓰러지듯 바위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면서 숨을 돌리고 에너지바와 육포를 씹어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360도 주위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찔한 절벽으로 이어지는 유명한 포토존 Visor에도 서 보고, 엄청 넓은(축구장 세 배 정도라고 한다) 정상부 저끝까지 토니와 걸어가 보기도 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이런저런 포즈로 다양한 사진을 찍었을 텐데, 정말 아쉽게도 정상 바로 밑에서 2년 전 뉴질랜드에서 카메라가 고장나 웰링턴 여행을 앞두고 급히 산 내 삼성 카메라 WB150F 배터리가 끝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아이폰 배터리도 아까부터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그리 섭섭하지도 않았다. 사진 못 찍는 건 그리 대수가 아니었다.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하프돔에 올라 요세미티 풍경을 맘껏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게 황홀하기만 했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 Shiker님의 올림푸스 단렌즈 카메라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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