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이 필요해

공항 게이트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노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가운데 하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충전 대열이라도 노트북 작업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십중팔구가 스마트폰 사용자들이다. 편하게 연결할 수 있는 전원 콘센트는 적고,
이용하려는 이들은 넘쳐 제법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명당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라도 어떻게든 충전구를 찾으려 발품을 팔기도 한다.

사실 비행기 안에선 별로 쓸 일이 없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아님에도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최대한 충전해 놓고 싶고, 다른 사람이 충전하고 있는 거 보면 갑자기 없던 필요도
생기면서 마음이 급해져 여기저기 두리번거릴 때도 있다. 인천공항은 게이트마다 충전 안내판과
충전용 테이블에 서로 다른 전압 표시까지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외국 공항에선
바닥에 꾸부려 앉거나 심지어 화장실 콘센트를 찾아 다닐 때도 있다.

화장실에서 충전하는 게 실감이 안 나는 분들도 있겠지만, 공항 화장실 세면대 근처를
잘 살펴 보면 대부분 콘센트가 있다. 이번 요세미티 백패킹에서도 둘째날 아침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사무실에 들려 허가증(Permit)을 받고 곰통(Canister)을 빌릴 때 마침 켜진 채로
밤을 지내 방전된 디카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반은 화장실에서(공교롭게도 중간에 청소
시간이 돼서 나와야 했다), 반은 마트 계산대 신세를 지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어떤 항공사들은 기내 좌석 팔걸이나 등받이에 충전용 콘센트를 부착해 놓는 깜찍한
서비스로 호평을 받긴 하지만, 아직까지 보편적인 기내 서비스로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공항 게이트에서의 Last minutes 충전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충전중에도 화면을
떠나지 못하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과 날렵한 손놀림을 구사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스마트폰이 정말 우리를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는 건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