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들의 생애
Posted 2014. 9. 2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한데 누워 초가을 따사로운 볕을 쬐고 있었다. 돗자리 하나당 얼추 수천 개씩은 돼 보였는데,
여름철 나무밑에 떨어져 구르는 것들을 줍는 데만도 한참 걸렸겠다 싶었다. 저 정도 모으려면
모르긴 해도 족히 수십 그루는 되지 않았을까. 저걸로 묵을 쑤면 몇십 개, 아니 몇백 개는
나오지 싶었다.
가까이 가 보니 같은 갈색이지만 여문 정도나 크기에 따라 조금씩 달랐고, 가지에 붙어
있던 쪽과 아랫쪽의 땟깔은 확연히 달라 보였다. 껍질이 진한 게 꼭 크고 잘 여문 건 아니겠지만,
윤이 나고 반짝거리는 녀석들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이렇게 얼마나 말리는 걸까. 비 예보는
없으니까 해가 져도 며칠 그대로 두는 건지, 아니면 밤엔 거두어 들였다가 다시 아침에
펼쳐 놓길 몇날 며칠 반복하는 걸까.
말린 지 제법 됐는지 껍질을 벗긴 도토리 알맹이들었는데, 속껍질이 붙어 있는 것들도 있고,
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도 보였다. 거의 다 말랐는지 보기 좋게 홍조를 띠고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땅콩이나 캐슈넛 껍질 벗긴 것 같은 모양새만으론 그냥 집어 먹어도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리 마시라. 맛은 보장할 수 없다.^^
가만 보니 가정에서는 껍질을 까서 말리고, 식당에선 껍질째 말리는 것 같은데, 도토리는
말리지 않으면 벌레가 잘 생긴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말리는 걸로 끝이 아니라, 여러 번
씻어 우려내야 떫은 맛이 줄어들고, 다 말린 다음엔 빻아서 가루를 내야 묵을 쑤든, 전을 하든
국수로 만들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길고 지난한 과정이다.
보이던 도토리가 이렇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윤이 났다. 아마 조금 성미가
급한 녀석들이 좀 더 가지에 붙어 있지 못하고 비바람에 못 이기는 척 서둘러 낙하해서 잠시
등산객들의 시선을 끌다가 배낭과 주머니로 이동했고, 여기저기서 줍고 모은 것들과 합해져서
볕 좋은 날 신문지나 돗자리에 펼쳐져 말리는 신세가 된 것 같았다.
개중 몇 녀석은 커다란 이파리와 함께 떨어진 걸로 봐서 신갈나무로 보이는데, 반만
덮고 있는 게 우리가 많이 듣는 상수리나 굴참나무와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올 가을
겨울에도 묵무침과 묵사발을 제법 먹을 텐데, 도토리들의 이런 과정을 한 번쯤 기억해
주어야겠다.
'I'm wandering > 동네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 위에서 구름과 놀다 (2) | 2014.09.23 |
---|---|
세로 사진, 가로 사진 (2) | 2014.09.22 |
큰 돌과 작은 돌의 하모니 (2) | 2014.09.17 |
남한산성 한봉 가는 길 (2) | 2014.09.16 |
벌봉 돌벤치 (2) | 2014.09.14 |
Response :
,
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