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치와 격조가 있는 산중 화장실
Posted 2014. 10. 1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남한산성 동문에서 가까운 장경사 앞엔 넓다란 마당에 꽃을 심고 새로 지은 듯한 한옥 한 채가 보이는데, 절의 부속건물처럼 보이지만 뜻밖에도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치곤 되게 고급스러워 보여 입구에서 잠시 긴가 민가 망설여지기까지 하는데^^, 담장까지 세워 놓은 엄연한 공중화장실이다. 보이는 쪽이 남성용이고, 여성용은 왼쪽에 문이 있는데, 중간에 서로 입구가 보이지 않도록 기와 얹은 담장이 있다.
외관만 번듯한 게 아니라, 들어가면 산중 화장실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식으로 시설을 해 놓았는데, 일단 냄새가 안 나고 깨끗해서 좋다. 한옥의 운치와 격조를 살리면서 내부는 서양식으로 잘 꾸며 놓은 이런 화장실이 시내가 아닌 산중에, 그것도 절 앞에 있다는 게 신기했고, 다른 지역에도 퍼져 나가면 좋을 것 같다.
내가 놀란 건, 짓는 건 웬만하면 누구나, 어디나 잘하지만, 결국 관리를 지속적으로 잘 하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엉망이 되는 시설이 많은데, 여긴 아주 청결해 보여 이용하는 이들이 오히려 조심조심 하게 만드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부 사진도 찍을 수 있었지만, 화장실이란 게 외부 이미지만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담지 않았다. 남한산성 동문 근처 갈 일이 있을 땐 볼일을 참고 가서 한 번씩 기분 좋게 이용해 보시길.^^
산사(山寺)의 화장실은 일반적으로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란 해우소(解憂所)라는 점잖고 약간은 해학적인 이름과 함께 전통적인 방식이 연상되지만, 요즘 절간 화장실들은 현대인들의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의외로 잘 만들어진 곳들이 많다. 화장실을 부르는 이름 가운데 기억에 남는 건 법정 스님 계셨던 성북동 길상사의 정랑(淨廊)이란 방언이다. 맑고 깨끗한 곳이란 뜻도 좋고 부르기도 좋은데, 장경사 앞 화장실도 이렇게 부르면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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