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팔자
Posted 2015. 1. 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연말에 송년회로 한남동에 갈 일이 있었는데, 차를 두고 갔더니 약속 시간 20분 전에
도착해 카페로 바로 가지 않고 근처 골목을 잠시 거닐었다. 태어나고 자란 보광동이 바로
옆인데다가, 아내가 다니던 회사가 있어 데이트도 많이 하던 동네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 골목을 다시 걸어볼까 싶었다. 지금은 광주 죽전으로 옮긴 단국대가 있던
자리는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고, 그 골목들엔 카페와 샵들이 들어서 있었다.
골목 어디엔가 용산구에서 세운 구립 노인요양원 건물이 들어서 있었는데, 세운 지
얼마 안 됐고 부촌에 속하는지라 겉보기에도 고급병원 느낌이 나는 현대적 시설이었다.
그 맞은 편은 경사가 있는 보도 블럭이 길게 깔려 있었는데, 안쪽 아파트 단지 절개면
조형물을 보호하기 위한 철책이 쳐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철책 하단부를 지푸라기
돗자리로 길게 포장해 놓은 것.
안쪽에 심긴 나무를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양 쳐 놓았지만 조금 생뚱맞아
보였다. 그만한 효과도 없어 보일 뿐더러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가능성은 좋은 동네 골목 분위기에 어울리는 경관을 꾸미려 한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투 톤 컬러가 골목 경사진 길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 같긴 했다.
건너편에 있는 노인요양원 창가에서 볼 때나 오가는 주민들에게 골목이 삭막해
보이지 않고 세련된 분위기를 내는 데 제법 기여할 것 같아 보였다. 사실 이 정도의
돗자리 장식은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아이디어로
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남동 골목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골목도
팔자가 있다면 한남동 이 골목은 상팔자를 타고 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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