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여행5 - 장어를 먹어보자
Posted 2015. 5. 11.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십여 년 전에 둘째와 둘이서 여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고, 이것저것 먹고, 찜질방에서 잤는데, 지금까지 녀석이 기억하면서 입맛을 다시는 게 둘째날 아침에 먹었던 장어구이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를 1인분씩 먹었는데, 그때 먹었던 집이 여직 있어 이번에 아내와 함께 오동도에 갔다가 점심 때 찾아갔다.
꽤 알려진 집이라 기다릴 생각은 했지만, 30명이 넘는 단체손님까지 있어 제법 기다리다가 자리를 안내받았다. 전에도 있던 메뉴인지 확실치 않은데, 점심 땐 장어탕 먹으러 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전과는 달리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를 2인분씩만 팔아 둘이 가면 골라야 하는 애로점이 있는데, 장어탕 1인분에 소금구이 2인분을 시켰다.
찬은 다섯 가지가 나오는데, 여수 돌산도 명물 갓김치와 마늘대 무침 그리고 쥐포 비스므리한 게 입에 착착 감겼다. 특히 돌산도에서 나는 갓으로 담근 갓김치는 짭짤하면서도 시원해 젓가락이 자주 갔다. 마늘대는 생긴 건 파와 비슷했는데, 파와는 달리 연중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마늘이 뿌리내리지 않은 이맘때라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매운맛은 안 나고 오히려 단맛이 나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먼저 장어탕이 나왔다. 김이 서리는 바람에 멋진 비주얼은 어려웠지만 만2천원 주고 한그릇 먹기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았다. 여수에선 우리가 흔히 아나고라고 부르는 바다장어인 붕장어를 쓰는데, 길고 도톰한 게 몇 토막 들어 있었고, 국물은 진하고 구수했다.
숯불이 얹혀지고 소금구이 2인분이 나왔다. 장어는 서울에서도 대체로 비싸지만, 180g 1인분에 2만원이면 싼 음식은 아니다. 5천원 정도 싸거나 몇십 그램 더 나오면 만족하겠는데, 내맘대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음식값이다. 우리처럼 술 안 먹고 구이만 먹는다면 조금 부족할듯 싶은데, 먼저 먹은 장어탕으로 양은 무난했다.
장어구이의 하이라이트는 춤추는 꼬리다. 갓 잡아 손질한 장어는 접시에선 죽은듯 있다가 불판에 올려지니 뜨거움을 견딜 수 없어 요동치는데, 꼬리 쪽의 웨이브는 볼만 했다. 한켠으론 참 인간이 잔인하단 생각도 들지만, 파드드득 용을 쓰는 장어맛을 볼 생각에 군침이 도니 이런 아이러니라니.
소금구이는 입에서 살살 녹았고, 죽여줬다. 이번 여행은 어머니를 괴산에 모시느라 점심은 동생네서, 그리고 저녁은 제수씨가 바라바리 싸 준 유부초밥과 과일로 차 안에서, 둘째날 아침은 사과 반쪽으로, 저녁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통감자와 임실치즈로 가볍게 때우고, 어떻게 하다 보니 제대로 사 먹은 건 이 집이 유일했는데, 여행지에서 단 한 끼 먹은 식사로는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명불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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