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가 아니구나
Posted 2015. 5. 1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산길을 걷다 보면 쓰러진 나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웬만해선 그대로 버티고 서서
고사목이 될지언정 스스로 쓰러지진 않는 나무들도 어느해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부러지거나 쓰러져 버린다. 쓰러진
나무들은 더 이상 아무런 볼품이 없어 아무데도 쓸모없는 천덕구러기 신세가 되는데,
개중에 어떤것들은 벤치로 재활용되는 행운을 누린다.
이때 쓰러진 나무는 모양 못지 않게 장소가 중요한데, 등산객들이 잠시 쉬면서
숨을 돌릴만한 근처에 쓰러져 누워 있던 나무들이 새로운 운명을 맞는 행운을 차지하게
된다. 적당한 그늘에 그냥 놓이기도 하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근사한 장의자로
새롭게 탄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손을 대지 않아 자연미가 그만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아무렇게나 놓인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서 있는 나무와
쓰러진 나무를 절묘하게 엮어 놓은 디자인 작품이란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서로 궁합이 맞게 갖다 놓았는지, 새삼 이걸 만든 이의 안목에 놀라게 된다.
산길이란 게 원래 생긴 대로 삐뚤빼뚤하고 경사가 지고 위아래가 높이 차가 있는
법이라 나무 하나로는 든든히 고정시킨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흔들거리고 불편할까봐
그보다 조금 작은 나무를 괴어 놓기도 하는데, 아예 한자 열 십자 형태로 괴어 놓는
디자인 감각을 선보이는 곳도 있다. 꼭 교회 다니는 이가 만든 건 아닐지라도^^,
이 구조가 가장 안정적이어서일 것 같은데, 어쨌든 보기 좋았다.
다른 아무런 장치를 하지 않고 그저 흔들거리거나 구르지 않도록 한쪽은 적당히
높이와 모양이 맞는 다른 나무를 괴놓고, 또 한쪽은 노끈으로 나무 기둥에 단단히 매어
놓는데, 이쯤 되면 흔들거리거나 덜그럭거리지 않아 오가는 이들의 휴식처로 제격이다.
얼기설기 동여맨 자리가 조금 안스러워 보였는지 나무기둥에서 새싹이 돋고 잎이
자라 끈들을 가릴 태세에 들어간 것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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