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여행4-하회마을 대문글씨들
Posted 2015. 12. 18.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풍산 유(柳)씨들의 집성촌인 안동 하화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대문에 붓글씨를 붙여 놓은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화선지에 붓글씨로 주로 사자성어[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입춘대길, 건양다경(建陽多慶,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로운 일이 많으리라) 등 길운(吉運)을 바라고 표방하는 글귀를 좌우로 써 붙이는데, 누가 양반 가문 아니랄까봐서 다른 데선 잘 못 보던 글귀가 여럿 보였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과 오는 부모들은 미리 예습해 두지 않으면 진땀깨나 흘릴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해서체로 단정하게 쓴 위 사진의 왼쪽 글귀는 상서로운 기운이 구름처럼 몰려오라는 서기운집이고, 아랫집은 행서체로 애한정 수명진이라 써 붙였는데, 한적하고 고요함을 사랑하고, 밝고 참됨을 지키라는 일종의 유유자적하는 선비 정신을 표방하고 있었다. 문 이름은 전각 글자체라 꼬불꼬불 해독이 잘 안 된다.^^
좌우 쌍으로 외 자로 써 놓은 집도 있었는데, 동물 가운데 용맹한 용과 호랑이가 지키는 집이니, 넘볼 생각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아랫집처럼 편하게 해서체로 쓰면 쉽게 알아볼 텐데, 예서체로 써서 호랑이 호 자가 참 진 자처럼 보여 헷갈리겠다. 외 자라서 네모 반듯하게 오리지 않고 다이아몬드처럼 각을 져서 잘라 붙인 것도 흥미롭다.
오랜 농경시대를 살았던지라 농사나 일기와 관련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는데, 땅은 3재를 몰아내라는 지축삼재, 하늘은 5복을 가져와 달라는 천수오복, 바람도 적당하고 비도 제 때 내리라는 화풍감우, 내내 평화롭고 풍요롭기를 바라는 세화연풍은 그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의 소박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과 가족을 넘어 나라의 태평성세와 백성의 안녕까지 염원하는 국태민안을 호기롭게 써 붙인 이들도 있었다. 얼핏 TK 본산 느낌을 받았다.^^ 시국이 화평하고 내내 풍요로우라는 시화연풍도 대략 비슷한 뜻으로 보면 되겠다. 오지랖이 넓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개인주의를 넘어 사회성이 강한 이들도 마을엔 감초처럼 필요하겠다.^^
이런 대문 축원에 복과 부가 빠지면 서운할 것이다. 많은 복이 구름처럼 일어나라는 만복운흥, 갖가지 재앙은 눈처럼 녹아 없어지라는 천재설소도 짝으로 많이 쓰던 말이다. 황금일만량은 부자 되세요의 옛날 버전이었을 텐데, 불요일교작은 정확한 뜻이 뭔지 알듯 말듯 싶다.
그래도 옛날에 한자를 배워둔 덕에 대충 읽고 때려 맞출 수 있었는데, 읽을 수 있는 이들만 읽게 하기보다는 기왕이면 마을을 방문하는 외국인들과 대부분의 한글세대들을 위해 한쪽 구석에 작지만 예쁘게 해설을 덧붙여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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