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여행8 - 달동네 촬영장 세트
Posted 2016. 12. 16.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드라마 촬영장 윗편에 마련된 달동네도 볼 게 많았다. 달동네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어 서울의 청계천 8가에도 간단하게 전시장을 마련해 놓았지만, 여긴 아예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작은 마을을 통째로 만들어 놓아 걸으면서 볼 게 많았다. 여길 구경하는 동안 카메라 날짜 설정에 문제가 생겨 여기서 찍은 것들만 몇 년 전 날짜로 등록되는 바람에 맥북에 옮기면서 최근 사진 폴더에 남아 있지 않고 구석에 숨어 있는 걸 찾아내는 해프닝이 있었다.
작은 언덕배기를 배경으로 문자 그대로 달을 볼 수 있는 달동네가 실물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60년대 서울 용산 한강변의 우리 동네 풍경과 매우 흡사해 걷는 내내 데자뷰를 느꼈다. 입구에 그려 놓은 뻥튀기 기계 앞에 선 아이들 중 나도 있었는데, 하는 기억은 이내 골목에서 자치기며 다방구며 찜뽕이며 우루루 몰려다니며 공을 차던 그 때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흙길과 쎄멘(시멘트) 길이 혼합돼 있었던 이런 계단 양편으로 스레트와 벽돌로 담벽을 쌓은 집들에 살았고, 온 식구가 안방에 둘러앉아 오봉(접었다 펼 수 있는 앉은뱅이상)을 펴서 찌개 반찬으로 삼시세끼를 먹었다. 캄캄한 밤이면 동네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취객들의 발자국 소리를 생생하게 들어야 했고, 라디오만 있던 동네에 흑백TV가 들어오면 다들 몰려가 구경하던 때였다.
상하수도 시설이 구비되지 않았던 때라 식수와 빨래 등은 동네 한쪽이나 집안에 파 놓은 우물가에서 해야 했다. 그러니까 우물가는 온 동네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생활터와 놀이터였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펌프로 대체되다가 집집마다 수도가 보급되면서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몇 미터가 넘는 깊이의 우물엔 간혹 사람이 빠지거나 죽기도 해 온 동네가 시끄러워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달동네 담벽엔 일본식 발음으로 도라무통이라 불리던 낡은 드럼통이 서 있는 집들이 있는데, 군부대 같은 데서 쓰던 저 기름통은 리어카에 싣거나 군고구마통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선술집 테이블로 쓰이기도 했다. 모든 게 귀하고 아쉽던 시절이었던지라 훌륭한 자원이 됐고, 어떤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내면서 한 번 굴려보는 게 소원이기도 했다.
격자 무늬 미닫이문에 붙였던 풀 먹인 창호지는 생각보다 질기고 단단해 제법 바람을 막아 주었지만, 얇은 벽과 숭숭 뚫린 틈새로 들어오는 우풍까지 막아낼 순 없어 겨울이면 언제나 무척 추웠다. 구들장을 깐 온돌방은 아궁이에서 나무를 때다가 십구공탄으로 데웠는데, 연탄 가스를 빼는 굴뚝이 필요했다. 간혹 밤새 틈 사이로 들어 온 연탄가스를 마셔 사경을 헤매는 이들이 집집마다 생기곤 했다. 순천에 가면 단돈 천원으로 하는 시간여행을 꼭들 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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