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집 난초정식
Posted 2010. 9. 16. 00:17,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남산에서 1박2일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명동에서 먹을 계획이었는데, 한 사람이 요 바로 밑에 한국의 집이란 근사한 곳이 있다면서 가자고 해서 들렸다. 한옥마을과 붙어 있었는데, 외관부터 넓다랗고 근사했고, 내부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서빙하는 여직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게 내외국인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았다.
우리가 먹은 건 난초정식인데, 점심치고는 약간 쎈 가격대였지만 자리값, 이름값으로 눈감아주기로 했다. 메뉴판 하단엔 저녁식사 메뉴가 있는데, 6만 8천원부터 25만원짜리 대장금 정식까지 5단계가 있었다. 접대용이 아니곤 입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런 가격대다. 아니, 누가 사 준다 해도 값을 알면 약간 또는 잠깐 어색할 것 같기도 하다.^^
분위기로나 가격대로나 막 먹으러 가는 집은 아니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정장을 하고 교양과 격조 있는 사교 모임 - 왜 한 입 넣고 입을 살짝 가리면서 하하 호호 하는 - 에 어울리는 집으로 여기면 될 것 같다.
난초정식은 죽부터 후식까지 10코스로 구성됐는데, 아쉬운대로 이 집의 풍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 입 크기의 삼색밀쌈은 색과 모양이 이뻤다.
장어구이와 떡갈비찜은 맛은 좋았지만 딱 한 점씩이었다. 여성들에겐 괜찮겠지만, 최소한 두 점씩은 나오면 좋았을 텐데, 조금 인색했다.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신선로였는데, 가운데에 숯인지 달궈진 돌인지가 담겨 있어 다 먹을 때까지 열기를 유지하는 게 포인트 같았다. 웬만한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없어 신기했지, 내용은 뭐 별 거 없었다. 국물은 시원했다. 숟가락으로 열심히 퍼 담으니까 고깃국 비스무리 했다. 명일동 오부자집 어복쟁반 생각이 났다.
진지와 국은 이름에 비해 정말 평범하다 못해 초라했다. 공기밥과 배추국에 반찬이라고 나온 것도 문자 그대로 기본찬이다. 사진에 나온 김치와 물김치 외에 서너 가지가 코딱지만큼 나왔는데, 두세 젓가락이면 없어지겠더구만. 하남이나 백운호수에서 1-2만원 하는 한정식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쳤다.
한국 자가 들어가니까 예전에 역삼동에서 일할 때 한국관이란 음식점에 들어간 일이 생각났다. 뭔가 있어보여서 들어갔는데, 이 집은 된장찌게였던지 기본 매뉴를 6천원 받았는데(10년 전쯤 일이다), 세상에! 밥값을 따로 받았다. 그것도 오곡밥이라며 2천5백원을. 왜들 장사를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괜시리 비싼 집 사진 올리면서 툴툴거렸는데, 좋았던 것 두 가지. 하나는, 내가 <전하 의자>로 이름붙인 두꺼운 방석 등받이가 있는 의자 - 왜 사극에서 임금이 앉는 의자 같은 거 있잖은가 - 였고, 또 하나는, 벽에 장식으로 걸어놓은 화선지 거치대였다. 단아하게 멋스러 보여 이름을 물어 들었는데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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