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걷는 즐거움
Posted 2017. 7. 1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지난주엔 사인암 올라가는 등산로 대신 옆으로 난 산길을 걸었다. 등산로를 버리고 산길을 걸었는데, 등산로와 산길이 어떻게 다르냐고? 그게 그거고, 엎치나 메치나 매한가지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어감도 다르고 실제 오르는 느낌도 다르다. 원래는 같은 산길이었는데, 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그 중 몇 개를 등산로로 정비하면서 주로 다니는 길이 되었고, 그 바람에 산길은 인적이 뜸해지면서 동네 사람들이나 아는 사람만 다니는 숨은 길이 된 것이다.
등산객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이 되다 보니 산길엔 낙엽이 많이 덮여 있고, 길이 나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길이 이어진다. 10년 동안 다닌 산이기에 전에 몇 번 이 길로 다닌 적이 있길래 망정이지, 초행길이었다면 중간에 이 길이 아닌가벼, 하면서 진작에 포기하고 내려오기 딱 좋은 모양새다. 그러니까 산길의 좋은 점은 남들 안 다니는 호젓한 분위기인데, 이건 동시에 중간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은근한 불안감을 감수하게 만든다.
등산로건 산길이건 이 길을 걷는 이들의 공통점 하나는 조금만 더 가면 능선이나 정상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인데, 산길을 걷다 보면 이게 자꾸 헷갈린다. 제법 온 것 같은데 여전히 비슷한 길이 펼쳐지기도 하고, 저쯤에선 길이 보여야 하는데 끊어지는 것 같고 왠지 점점 다른 길로 접어드는 느낌이 불현듯 찾아오면서 괜히 여기로 들어섰다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이럴 땐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한데, 형편이 되면 최대한 발걸음을 서둘러 직진 돌파를 감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조바심일랑 내려놓고 그냥 지금 이곳을 즐기면서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동네산 같은 데서는 따지고 보면 크게 차이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심리적 피로는 다르게 느껴진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능선에 거의 이르른 것 같은 느낌을 두세 차례 받다 보면 드디어 저 멀리 진짜 능선이 다가와 주는데, 이럴 때의 왈칵 반가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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