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일기 2002
Posted 2018. 3. 6.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사회학자이며 파리지앵이었던 정수복 선생의 새 책이 나왔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활동하다가 다시 파리로 갔던 2002년 거의 한 해 동안의 일기 50여 편을 추려 모은 책이다(지금은 다시 귀국했다). 보통은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표지와 서문, 본문 디자인 등을 훑어보고 나중에 보게 되는데, 남의 일기 들여다보는 재미에 바로 읽어내려갔다. 중간중간 저자가 찍은 블로그 느낌의 단정한 사진과 발문들도 여백의 아름다움을 보태면서 글 읽기를 도와주었다.
가진 실력에 비해 잘 풀리지 않았지만^^(학부와 석박사 전공이 다른 경우 대학에 자리 잡기 어려운 풍토탓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 추정이다), 지식인 특유의 교양과 품위에 빼어난 문장이 흡인했기 때문인데, 일본에 사는 서경식 선생도 내게 이 둘을 고루 갖춘 저자로 기억된다. 최근 일기도 아니고 15년 전의 파리 생활을 담은 묵은 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전성기라 할 수 있는 50이 되기 전에 자발적 소외, 유목민의 삶을 택한 선생의 결기가 느껴져 시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열 권 남짓 되는 정수복의 책은 거의 읽었는데, 대부분 파리와 책을 소재로 썼다. 대표작은 파리 곳곳을 특별한 목적 없이 여기 저기 걷는(aimless wandering) 플라뇌르(flâneur)의 삶의 진수를 보여준 『파리를 생각한다』(2009)이다. 마침 부인인 심리학자 장미란의 『파리의 여자들』도 나와 함께 주문했다. 두 사람은 예전에 『바다로 간 게으름뱅이』(2001)를 함께 쓴 적이 있다. 책 날개를 보니 아들(정대인)도 에펠탑 관련한 책을 쓴 모양인데.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볼 참이다.
위의 책 사진에는 빠뜨렸지만 선생이 둥지 철학자 박이문 선생(1930-2017)과 만나 대화를 나눈 인터뷰집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알마, 2013)도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일종의 평전이지만, 오랜 시간 교유해 온 두 사람의 대화를 상당 부분 담고 있어 단지 읽는데 그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고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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