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행궁 추사 글씨
Posted 2018. 9. 1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
남한산성 안에 있는 행궁 후원엔 이위정이란 정자가 서 있는데, 병자호란과 관련된 건
아니고, 19세기 초반 이곳 일대를 다스리던 광주 유수(지금의 군수나 시장)가 활쏘는 공간으로
지었다고 한다. 정자 이름을 적어 놓은 편액(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걸어 놓는 틀)은
일제 강점기에 유실됐다는데, 다행히 탁본(먹을 묻혀 종이에 글자 그대로 떠낸 것)이
남아 있어 몇 년 전에 복원하면서 같은 모양으로 달아놓았다고 한다.
특별할 게 없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안쪽에 이 정자를 세운 연유를 담은 "이위정기(記)"
필체가 힘차 보여 한참 바라봤다(정자 안엔 별 게 없지만 올라갈 순 없게 돼 있어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보진 못했다). 나중에 브로셔를 보니 추사 김정희가 31세에 쓴 글씨였다. 추사의
글씨는 양재 코스트코 건너편 골목 안쪽에 있는 과천 추사박물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정자의 글씨 역시 진품은 아니고 탁본을 다시 살려낸 거지만, 역시 잘 쓴 글씨는 볼만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누구나 스마트폰 사진으로 쉽게 남기고 간직할 수 있게 됐지만, 사진
기술이 없던 시절에 탁본은 비문에 새기거나 전각을 뜬 당대 일급 서예가들의 작품을 보관하고
따라 써 보면서 연습하는 유용한 방법이었다. 가령 만주 벌판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 같은
것도 그 존재는 들어봤어도 일반인이 실제로 가서 보기가 만만찮은데, 탁본으로 된 게
책에 실리거나 인쇄되면서 널리 알려졌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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