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Posted 2019. 5. 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지난주엔 신촌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어째 일이 어긋나 시간이 남는 바람에 그 동안 한 번
해 보려고 생각만 했던 연세대를 거쳐 봉원사로 해서 안산 둘레길을 걸어 독립문역으로 내려오는
계획에 없던 도심 트레킹을 했다(마침 이 학교를 나온 이와 동행하게 돼 코스를 그리 잡을 수
있었다). 먼 거리나 높은 산이 아니어서 천천히 세 시간 정도 걸었는데, 서울 도심에 이런
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서울은 깊고 넓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했다.
봉원사(코엑스 건너에 있는 건 조계종 봉은사이고, 여긴 태고종이었다) 앞 언덕배기엔
3백년 된 보호수가 보였는데, 커다란 느티나무였다. 사찰 입구엔 초파일 거의 한 달 전부터
연등을 달아 놓는지라 느티나무 사이로도 오색 연등이 걸려 있었는데, 나무 아랫쪽에도 뭔가를
치렁치렁 걸고 있어 가까이 가 봤다. 이 터줏대감을 보호하기 위한 수액들이었는데, 나무
앞뒤로 열 개가 넘게 꽂혀 있었다.
이 정도 나무라면 응당 보호 받고 돌봄을 받는 게 당연하겠는데, 수액더미까지 제공하는 건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에게만 놓는 줄 알았는데 나무도 그 대상이 된다는 것,
그리고 한두 개가 아니라 앞뒤로 십여 개를 꽂고 천천히 스며 들게 하는 게 흥미로웠다. 한 번
주고 마는 건지, 일정 간격으로 영양수액을 주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3백여 년을 이 마당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마을을 지켜온 나무라면 이 정도 대접이야 마땅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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