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균형감각
Posted 2019. 10. 1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산을 찾고 오르내리는 일은 산 아래 저 멀리서 바라보며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다소
지루하고 대체로 무료할 때가 많다. 아무 생각도 안 드는 등 이런저런 유익을 맛보기도
하지만, 등산 자체는 힘들고 번거롭고 버거운 경우가 많다. 곧 단풍철이 되고 늦가을 낙엽이며
설산 그리고 겨우내 오랜 기다림 끝에 새싹과 신록과 한여름 빽빽한 산중을 거닐며 호흡하고
바라보는 즐거움 뒤안길엔 단조로운 타박타박 걸음이 수놓아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 작은 위안을 주는 것 중 하나가 산길 저만치에 가끔씩 보이는 크고작은
돌탑이다. 개중에는 경탄케 만드는 크고 높고 멋진 작품들도 있지만, 대개 작은 돌맹이
두서너 개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데를 지나노라면 이심전심 인지상정이란 걸 느끼게 된다.
처음엔 돌탑 전체를 보다가 언젠가부터 맨 위에 쌓아올린 작은 돌탑, 그러니까 피니시
(Finish) 부분의 변화를 그때그때 살펴보곤 한다.
이성산성 가는 길에 쌓아올린 돌탑 상단은 가끔씩 모양이 바뀌는데, 볼 때마다 절묘한
균형감각에 감탄을 금할 수 없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만든다. 삐죽빼죽한 크고 작은 돌
예닐곱 개로 만든 모양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수준급이어서 갈 때마다 동서남북
사방을 돌면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서 있는 돌탑 상단에서
내가 발견한 작은 비밀 중 하나는 바람구멍이다.
이 바람구명은 처음엔 안 보이다가 한 바퀴 돌면서 보다 보면 어느 방향에선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솜씨 좋게 쌓아올린 돌들이 쉽게 흔들릴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행여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자칫 넘어지거나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의외로 든든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게 이 작은 바람구명이라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이 바람구멍은
이 돌탑의 숨통을 이루고 있는 셈인데, 새삼 자연의 조화가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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