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소거 버튼이 있었군
Posted 2020. 11.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아서라, 말아라2월 마지막 주일부터 교회에 가지 않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계속되고 있는데, 많이 익숙해졌고 편하게 느껴져 원래 주일 아침은 이랬었나 싶을 정도다. 작년 이맘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서울 한복판의 유서 깊은 대형교회 예배인지라 회중이 함께 부르는 것만 여섯 곡, 찬양대와 봉헌 특순까지 모두 여덟 곡의 찬송 사이 사이로 다른 순서들이 배열된 예배는 새로 지은 예배당 만큼이나 깔끔하고 번거롭지 않아서 좋다.
안타까운 점은 장로들의 기도다. 언제부터인지 대부분의 교회 장로들은 주일예배 기도를 써서 읽는다. 마땅히 회중을 대표해 기도할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한시간 남짓 정해진 시간에 이어지는 다른 순서들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지나치게 길게 늘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열이면 아홉이 공기도라기보다는, 개인의 시덥지 않고 후진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장 연설인 경우가 많다. 공감과 감동에서 아멘은커녕 AC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교회당에선 이럴 때 그냥 눈 뜨고 성경책을 펴거나 주보를 훑어보곤 했는데, 온라인 예배에선 그냥 혀를 끌끌 한 번 차주곤 어서 기도 순서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게다가 이 웬수들은 길게도 한다). 그러다가 지난 주엔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노트북에 있는 음소거 버튼(F10)을 눌러주는 것이다.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듣지 않게 되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대신에 뭘 할진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을 펴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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