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았구나
Posted 2022. 7.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만 스물이 되던 해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대학 2학년, 4월 초였다. 재수 후 들어간 대학 첫 학기 성적은 평범했는데, 2학기엔 분발했는지 성적 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병실에서 듣고 기뻐하신 지 얼마 안 지나서였다.
말씀이 별로 없으시기도 했고, 위로 형들과 누나가 있어 부친과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는데, 목수셨던 부친이 돌아가시기 한두 해 전에 근사한 6단 책꽂이를 만들어 주셨다. 150×180 사이즈니 얼추 3백권 정도 들어가는 책꽂이는 책 욕심을 부채질하면서 책 읽는 버릇을 길러 주었다.
결혼하고도 한동안 거실에 놓여 있다가 책이 늘어나면서 이십여 년 전에 100×90 사이즈 3단 새 책꽂이 4개를 홍대 앞에서 짜 온 뒤론 방으로 밀려나기에 이르렀다. 두세 차례 책을 정리하는 와중에 이젠 버리고 좀 더 가로가 짧은 걸로 들여야 하나 하는 위기를 맞았으나, 거실 책꽂이들이 안방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거실에 놓이게 됐다.
이번엔 용케 살아남았지만, 아무래도 덩치가 있어 다음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순 없다. 한두 번 더 책을 줄이게 되면 아마 이 책꽂이도 시효를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더 간직하면 이 친구와도 반백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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