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Posted 2012. 2. 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체감온도 영하 20도가 조금 풀린 금요일 점심 사인암에 다녀왔다. 몸에 와 닿는 맹렬한 추위는
아니어서 사흘 전 눈이 많이 오긴 했어도 다행히 얼어붙지 않아 아이젠 없이도 오르내릴만 했다.
그래도 눈길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고, 더디고, 보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보통 때보다 5분이
더 걸렸는데, 천천히 걷게 되니까 숨은 덜 차 좋다.
눈이 오면 누군가가 부지런히 눈을 치우거나 밟고 올라가면서 길을 내 준다.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꽤나 미끄럽고 길을 찾느라 바짝 긴장했을 텐데, 덕분에 양옆에 쌓인 눈과 주변
풍경을 보며 무심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눈 때문에 구불구불한 등산로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보여 겨울 눈길 산책이 즐겁다.
두 해 전 여름 태풍이 몰려왔을 때 쓰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다가 눈이 내리면서
작품이 됐다. 비스듬히 누워 있지 않고 다른 나무들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면 눈이 쌓일 수도,
쌓인 눈이 남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나무들은 특별한 시선을 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지만, 이 나무는 구경거리라도 난 양 오르내리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눈길에는 나무만 아니라 바위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흰 눈이 수북이 쌓여 그렇잖아도 큰 바위가 더 커 보인다. 한두 사람이 누울 수 있어 보이는
바위 밑은 눈이 쌓이지 않았는데, 공중에 노출된 바위 위야 어쩔 수 없지만 바위 아래 땅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면 거대한 두꺼비 형상의 이층 바위가 나오는데, 이 친구들 눈을 지긋이 감고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감상하며 간만에 많이 내린 눈을 온몸으로 반기면서 눈 샤워와
겨울 썬탠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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