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있는 강조법
Posted 2012. 3. 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주일 예배를 마치고 대학로로 해서 혜화동 고개 지나 성북동 슬로우 가든에서 둘이
점심 나들이를 했다. 신설동에 있는 교회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주문하고
마침 문 옆 난롯가 2인 테이블이 비어 있길래 자리를 잡았다. 봄이 시작되는 3월 첫 주일은
쌀쌀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온기가 그리운 날씨였다.
본체나 연통이나 투박하게 생긴 고철 난로는 다소 낡고 엉성해 보였고, 난로 위나
주변도 약간 어질러져 있는데, 난로 주변에 대충 쌓아 놓은 장작더미는 아주 깨끗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히 지저분하지도 않은 게 이 집 이름처럼 대체로 슬로우해 보였다.
불 기운도 아주 뜨겁지도 아주 약하지도 않아 흐르는 오래된 팝송과 함께 적당히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난롯가에 앉아 손을 뻗어 기분 좋은 온기를 느끼다가 창가에 걸쳐 놓은 불조심 판에
눈이 갔다. 역시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유리창에 기대 놓았는데, 그래도 나무 재질과 바탕색이
나름 잘 어울리는 빈티지 풍이었다. 벽에 걸어 놓으려 한듯 양끝에 묶은 철사도 한몫
거들었다.
근데, 이 불조심 판, 나름 대로 이중 강조를 하고 있었다. 글자 하나 하나 위에 방점을
찍어 강조하고 있고, 자세히 보면 첫 글자 '불' 자의 받침이 한 획을 더 그어 유머러스하게
재차 강조하고 있었다. 마치 ㄹ 받침 하나를 더한 것 같은데, 만든이가 보는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뱀꼬리 형상으로 길게 그려 놓았나 보다. 재치와 감각이 느껴진다.
조금 덜 건조된 장작을 넣었는지 식사를 마칠 때쯤 살짝 연기와 함께 재가 피어 올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에서 커피와 와인을 마시던 커플은 다른 테이블로 피해 가고,
부랴부랴 여직원이 오더니 10분 정도 난로 작업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불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난로 속이 궁금했는데, 이때다 싶어 난로 속살을 몇 장 찍었다.
예상했던 대로 불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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