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도매서점가
Posted 2012. 3. 22.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주일 오후에 종로5가 광장시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6가의 대학천 도매서점 골목을 기웃거렸다. 약국들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데, 대학시절부터 십여 년 넘게 들락거린 골목이다. 50미터가 채 안 되는 좁은 골목 양편으로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서점이 한때 80여 곳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청계천의 헌책 가게들과는 또 다른 수요를 형성하면서 인터넷 서점들이 생기기 전까지 새 책을 조금 싸게(20-25% 정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발품을 팔면 작은 기쁨을 얻던 곳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저 골목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신문이나 잡지에 난 신간 기사를 읽고서 사고 싶은 책 이름을 몇 권 적어서 직원들에게 주면 귀신같이 빠르게 찾아 꺼내주고, 어떤 땐 자기네 가게에 없는 책은 옆집에서 구해다 주기도 했다.
서점에 따라 나같이 몇 만원 어치 사러 가는 손님을 아예 안 받는 곳도 있고, 모른 체하며 상대해 주던 곳도 있었다. 그때에 비해 책 사볼 여유는 생겼는데, 나처럼 인터넷 서점만 다니는 이들이 늘어나 막상 이곳은 사양길을 걷고 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거의 셔터를 내리고 쉬고 있어 아쉽게도 막상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볼 순 없었다.
6가쪽에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엔 관음서점이, 왼쪽엔 종로기독서적이 있는데, 재밌는 건 주인이 불교를 믿어 서점 이름을 그리 지었을 것 같은 관음서점에서 성경 찬송가를 팔고 있었다는 것. 하긴 없는 거 빼고 다 있었을 도매서점가에서 안 파는 게 더 이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나도 왼쪽 가게보다는 이 서점을 많이 다녔다.^^ 성경들 말고 내가 보던 잡지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 골목에서 내가 제일 많이 들락거린 서점은 지금은 없어진 송인서점이었다. 매장이 커서 웬만한 책은 다 구할 수 있어 자주 다녔다. 몇 번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도 출판 관련 저널을 내기도 하고, 이 서점을 아끼던 이들이 어떻게든 살리려 애를 썼지만, 결국 문을 닫고 상호를 바꾼지 오래 됐다.
그랬던 이곳이 또 망했는지 다시 폐업중이라는 쓸쓸한 통지를 셔터 위에 붙여놨다. 그냥 폐업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폐업중이라고 했을까? 자세히는 몰라도 출판 도매업의 특성을 반영한 문구일 것 같다. 도매상이니만큼 서점들 가운데 줄 돈과 받을 어음이 있을 테고, 그 셈이 깨끗이 안 끝났단 말일 게다. 그 와중에 새 임자가 나서 새로 문을 열 수도 있는데, 가능성이 커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책장사들답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헛헛한 인삿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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