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길 2코스 - 천주교 양근성지
Posted 2013. 6. 5.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연이틀 물소리길 2코스에 대해 쓴소리를 했는데, 새로 생긴 길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었다. 2코스엔 별로 볼 게 없나 보다 하던 차에 막바지에 이르러 아주 멋진 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주교 양근성지다.
양근(陽根)은 버드나무의 뿌리란 말인데 양평의 옛 이름이기도 하고, 기실 버드나무는 천주교 신자들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잘 몰랐는데, 이곳은 한국 천주교의 요람 가운데 한 곳으로, 카톨릭 신자들의 중요한 성지순례 코스 중 하나라 한다. 2007년에 새로 지은 성당과 넓은 마당 곳곳에 서 있는 멋진 조각상들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반겨준다.
강변에 위치한 이 곳엔 붉은 벽돌의 서구식 순교자 기념성당이 들어서 있고, 성당 앞뜰엔 성인이 된 순교자들상과 십자가상들이 세워져 있지만,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돌아볼 수 있게 돼 있다. 정문 앞 안내판에도 단순한 환영의 의미를 넘어 쉼을 얻으라는 복음서의 한 구절을 적어놓았다. 바로 옆엔 강변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시간을 내는 만큼 다양한 볼거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여러 조각상들 가운데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대에 달린 그리스도상인데, 특이하게도 앞뒤로 그리스도가 못 박혀 있다. 어느쪽에서든지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 세운 건지, 아니면 천주교의 십자가가 그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마침 내가 갔을 때가 오후 3시가 조금 지났을 땐데, 십자가상 위 구름 사이로 은은한 빛이 비취고 있었다.
마당 한쪽으로는 십자가의 길이란 주제로 가시관을 쓰고 나무 십자가를 들고 서 있는 청동 조각상을 필두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장면마다 다양하게 형상화한 작품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옛날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그린 성화들이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는 역할을 한 것처럼, 이 조각상들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여정의 순간순간을 풀어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중 두 개를 클로즈업해 봤는데,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단아한 게 세련된 조형미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나치게 과하거나 튀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입체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십자가와 관련한 주제를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게 한국 천주교의 숨겨진 저력으로 다가왔다. 거칠게 말해서, 개신교의 십자가가 직설적이고 전투적이라면, 천주교의 그것은 은은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다른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성당 안엔 분위기 좋은 카페 비슷한 공간도 있다는데, 문이 막 닫혀서 들어가진 못했다. 성당 경내는 물론이고 강변을 따라 묵상을 하거나 사색을 하며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는데, 근 네 시간 가까이 걷고 있던 중이라 게까지 갔다 오는 건 무리였다. 나중에 차로 가서 여유 있게 성지 이곳저곳을 요모조모 둘러보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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