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2인자 또는 No. 3들을 위하여
Posted 2010. 2. 18. 15:18,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오늘 점심 산책을 하는데, 저 앞에 빗자루와 삽을 든 어른 네 분이 먼저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조금 뒤에 따라가 "수고하십니다. 눈이 오면 누가 길을 내는 수고를 하셨는가 궁금했는데, 어르신들이셨군요."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눈이 오면 산과 산책로의 길을 쓸고, 나무나 돌계단 등이 무너지면 수선하는 분들이었다. 자원봉사자인지 지자체에 속한 일꾼들인지 모르겠지만 고마운 분들이다.
산책하는 동안 문득 <무대 뒤에 선 영웅들>이란 책이 생각났다. 딱 이 제목에 맞는 분들이다. 물론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넘버 투'들을 다룬 거지만, 이분들 하는 일도 그에 별로 손색없어 보인다. 마침 두어 해 전에 써둔 서평이 있어 올려본다. 지금은 없어진 <굿모닝 지저스>란 월간QT지(생명의말씀사) 2007년 10월호에 실었던 글이다.
훌륭한 2인자 또는 No. 3들을 위하여
- 강준민 목사의 『무대 뒤에 선 영웅들』
보이지 않게 수고한 사람들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출된 후보들이 뉴스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연일 마이크와 카메라 앵글은 주인공에게 집중되고, 이들은 문자 그대로 일생일대의 각광(脚光)을 받고 있다. 다소 거품이 있다손 치더라도 각종 찬사(讚辭)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들의 리더십과 노고, 흘린 땀은 보상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막전(幕前) 막후(幕後)에서 보이지 않게 수고한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주 잊히고 가리어지기 쉽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고 헌신한 일꾼들이 가장 많이 나오기는 성경만한 게 없을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 베드로와 바울 등 이름 대기도 벅찰 정도로 허다한 기라성 같은(사실 이 말은 전형적인 일본어투로 ‘샛별 같은’으로 바꿔 써야 하지만, 워낙 입에 밴 말이라 그냥 사용했다) 성경의 인물들은 좋아하는 이들도 많고, 본받아 따르는 이들도 많으며,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자주 언급된다. 물론 이들도 인간인지라 때론 넘어지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다소간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믿음과 주를 향한 열심과 헌신은 칭송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영웅들이 있기까지 무대 뒤에서 이들의 손발이 되어 주고, 노심초사 함께 동역하지만 주인공에 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한 또 다른 숨은 영웅들이 있다.
사실 좋게 말해 무대 뒤 영웅이지, 무대 뒤를 일부러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도 마찬가지여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거나 모델이 될 만한 주연급 스타들에 관한 책은 넘쳐나지만, 보조역이나 엑스트라로 잠깐 등장하거나 비중이 낮은 인물에겐 특별한 시선을 주지도 않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법이다. 그런데 강준민 목사(LA 동양성결교회)가 2005년에 쓴 『무대 뒤에 선 영웅들』(두란노)은 모처럼 이런 인물들에 주목한다. 지난 10년간 30여 권에 이르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있고, 올 가을에 한국인 저자로는 최초로 미국 IVP에서 책을 내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는 저자는, 어찌 보면 자신과는 다른 처지에서 잘 안 보이지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무대 뒤 사람들에 따뜻한 애정을 보내며, 이들의 삶에 나타난 보석 같은 교훈을 묵상하고 있다.
무대 뒤에 선 영웅 12명
서문에서 저자는 무대 뒤에 선 영웅들에 주목하게 된 배경을 들려준다. 오늘의 명성과는 달리 그 자신이 오랜 날들을 무대 뒤에서, 광야(빈 들) 같은 곳에서 무명으로 지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탁월한 영적 거장들을 섬길 기회를 갖게 되면서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고, 또한 배후에서 그들을 돕는 수많은 손길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훌륭한 2인자(No. 2) 또는 넘버 쓰리(No. 3)의 삶을 산 사람들은 변함없는 성실함과 진실함, 긍정적인 자아상과 겸비된 실력으로 무대 위에 선 리더를 섬기면서 무대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에 충실했다.
무대 뒤에 선 영웅들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열정보다 식지 않는 성실성이다.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다. 담백함과 단순함을 즐기는 마음이다.(43면, 저자는 설교하듯 경어체로 썼지만, 여기서는 평어체로 인용)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무대 뒤에 선 영웅들 가운데 많지도 적지도 않은 12명을 택해 그들의 삶의 특징을 마치 QT하듯 깊이 있게 묵상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쯤에서 저자가 가려 뽑은 무대 뒤 영웅들이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저자의 선택을 보기 전에 독자들도 나름대로 떠오르는 무대 뒤 영웅으로 추천할 만한 인물들을 생각해 본 후 몇 명이 일치하는지 대조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 엘리에셀
● 모세의 기도하는 팔을 붙잡아 준 훌
● 모세의 모사가 된 장인 이드로
● 여호수아를 위해 무대 배경이 되어 준 갈렙
● 다윗을 생명처럼 사랑한 친구 요나단
● 엘리사를 수종 든 수넴 여인
● 나아만 장군을 구원한 작은 계집종
● 에스더를 왕비로 키운 모르드개
●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
● 바울을 역사의 무대에 세운 바나바
● 베드로를 위해 기도한 로데
● 바울을 위해 헌신한 에바브로디도
저자가 고른 무대 뒤에 선 영웅 12명의 삶을 요모조모 차근차근 살펴보노라면 결국 그리스도의 제자를 자처하는 우리네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게 된다. 또한 우리 자신이 비록 사람들이 주목하고 환호하는 내로라하는 영웅은 아닐지라도, 그 영웅을 돕고 섬기는 무대 뒤의 또 다른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무대 뒤에 선 영웅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대 뒤에 선 영웅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밝혀 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무대 뒤에 선 영웅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섬김을 보배롭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상을 주셨기 때문이다. (15면)
휘황찬란한 무대 위와는 달리 무대 뒤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저자의 묵상은 인상적이며, 그러한 무대 뒤 사람들의 특징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꼼꼼하고 정확하다. 장별로 서너 개씩 나오는 무대 뒤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만 나열해도 헬퍼십(Helpership) 가이드라인으로 손색이 없다. 건강한 자아상을 갖고, 충성스런 종의 태도를 갖고, 섬기는 일에 통달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생각이 주밀하고, 큰 그림을 볼 줄 알고, 함께 일할 줄 알고, 사람을 세울 줄 알고, 소명에 따라 살다가, 적절한 때에 조용히 물러설 줄 안다 등이 그렇다. 제자도(Discipleship)가 따로 없다. 가령 엘리사를 수종들었던 수넴 여인의 주밀한 생각에서 우러난 진정한 격려를 설명하는 대목(6장)은 정말 인상적이다. 과연 그렇지 아니한가?
사랑은 집중된 관심이다. 집중된 관심을 가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관찰하게 되고 돕게 된다. 사랑하면 생각이 주밀해지고, 생각이 주밀해질 때 상대방의 필요에 민감해진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아픔과 내면의 외로움을 감지하게 된다. (135면)
크게 드러나지도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외롭고 고독하기까지 한 무대 뒤 영웅들의 삶을 지속시키는
비결은 무엇일까? 결국 어떤 테크닉이나 방법론보다는 성품과 자질의 문제로 귀착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영웅은 위대한 업적이나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성품과 관련 있다. (9면)
깊은 묵상에서 나오는 간결한 문장
이 책을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내용 외에도 저자가 짧은 기간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우뚝 서게 된 여러 특징들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술가로 알려지기 전에 미국 코스타 QT 강사로 이름을 알린 저자답게 해당 성경본문 묵상에서 관찰이 정확하고 깊고 충실하다는 점은 저자의 책이 갖는 큰 특장점이다. 잘 써진 목회자들의 책이 일반적으로 성경 묵상에 충실하지만, 저자의 묵상은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어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성경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또 저자의 문장은 보통 한 줄을 넘지 않고 간결하고 단정한데, 이는 동시대 우리 저자들에게서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자 대단한 경쟁력이다. 한 문장이 서너 줄은 보통이고, 너댓 줄은 기본인 만연체에, 설교투(~하는 것입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문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목회자들 사이에서 저자의 문장 기법은 단연 연구 대상이다. 조금 과찬이 될지 모르지만, 성경 보는 눈이 정확하고 문장 또한 좋으니 독자들이 선호하는 저자로 자리 잡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여기다가 이 책에는 중간 중간 내용과 잘 어울리는 예화가 많이 실려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저자가 즐겨 읽었던 시와 책들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저자가 시종 강조하는 마지막 한 가지는 무대 뒤 사람들에게 가장 든든한 우군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은 무대 뒤에 선 영웅들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신다. 하나님의 눈길은 그들에게 머물러 있다.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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