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우이동 멸치국수
Posted 2012. 10. 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추석날 오후에 백운대 등반을 마치고 도선사 앞에 내려오니 6시, 산 중턱에서 송편 몇 개로 점심을 했더니 살짝 시장끼가 돈다. 추석이라 식당들도 많이 문을 닫았는데, 내려오다 보니 우이동 대로변에 멸치국수 집이 하나 영업중이었다. 작은 분식집 크기였는데, 동네 이름을 앞에 내건 국수맛이 괜찮을 듯 싶어 들어갔다.
국수와 칼국수 그리고 덮밥과 볶음밥을 낸다는 차림표가 단출했는데, 음식값도 착했다. 열 가지 정도 되는 메뉴는 왠지 다 맛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우린 둘뿐이라 두세 개만 시켜야 한다.
주인인듯한 여성의 얼굴 사진과 함께 주문과 관련된 메시지를 프린트해 붙여 놓은 게 재밌다. 곱빼기에 대한 규칙, 그리고 멸치육수에 대한 자부심이 특별해 보였다. 주문하기도 전에 맛이 기대가 된다.
보통 처음 가는 집에서는 1번 메뉴를 시키면 그런대로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데, 고심 끝에 로즈마리는 오뎅멸치국수를, 난 멸치칼국수를 곱빼기로 시켰다. 국수가 나오기 전에 찐계란 세 알을 나눠 먹었다.^^
멸치국수에 오뎅이 들어간 오뎅멸치국수는 깜짝 놀랄만한 맛을 선사했다. 깊고 칼칼한 국물맛이 태평양에 멸치 지나간 듯한 맛만 내다 만 멸치국수와는 번짓수부터 달랐다. 제대로 낸 국물맛에 둘의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내가 시킨 멸치칼국수는 커다란 뚝배기에 담아 나왔는데, 호박을 많이 넣고 빨간 고추로 비주얼을 살렸다. 같은 육수에 끓인 칼국수니 이것도 후루룩 쭉쭉쩝쩝 잘도 넘어간다. 어떻게 이 생소한 동네에서 맛집을 골라 들어왔는지, 둘은 신났다. 몇 젓가락씩 먹다가 바꿔 먹어보고, 국물 들이키고, 아주 날잡았다.^^ 반찬은 적당히 익은 싱싱한 김치 하나였지만, 이 집 국수엔 이 맛있는 김치 하나면 딱이다. 당연히 김치도 리필해야 했다.
먹으면서 앉은쪽 벽을 보니 멸치육수를 병에 담아 판다는 광고를 붙여놨다. 계산할 때 세 병을 사 와서 한 병은 가는 길에 형수님께 드리고 두 병을 가져왔는데, 로즈마리가 명절 다음날 고추장두부찌개 두 냄비 만들면서 한 병을 다 썼다. 왠지 다른 때보다 찌개 맛이 좋더라니, 역시 이유가 있었다.^^ 한 병 남은 건 우리도 집에서 멸치국수 한 번 해 먹으려고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그것도 기대된다.
계산하면서 보니 한 구석에 이 집 육수의 비밀이자 신비이자 근본인 큰 멸치가 여러 상자 쌓여 있었다. 멸치 땟깔 보는 법은 잘 몰라도, 아마도 신뢰할만한 재료를 쓴다는 이 가게의 순진한 영업행위가 아니었을까.^^
작은 가게라고 무시해선 안 되는 게, 이 집 상호를 그대로 붙인 식당들이 여러 곳에 성업중인 것 같았다. 인근 도봉, 고대점에 강서구와 송파 그리고 화성 동탄과 포항에도 우이동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걸로 볼 때 멸치육수를 공유하는 프랜차이즈 같았는데, 이쯤 되면 촌동네 사는 우리만 몰랐지 이 집이 꽤 알려진 맛집일지 모르겠다. 다음에 북한산을 가게 되면 이 집에 다시 들릴 것이고, 멸치육수 사 오기 위해서도 북한산을 서둘러 다시 찾게될지 모르겠다.
'I'm wandering > 百味百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들섬 돈까스 (2) | 2012.10.24 |
---|---|
점심으로 빵과 커피를 먹다 (6) | 2012.10.12 |
전어 포식 (2) | 2012.10.04 |
공짜 커피는 맛있다 (2) | 2012.09.24 |
황제 짬뽕 (2) | 201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