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의 격조 있는 현수막
Posted 2013. 12.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
11월을 보내면서 양평에 있는 백운봉을 오르기로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용문산 자연휴양림에서 오를 수도 있고, 사나사 계곡길도 있어 일단 사나사 앞으로 갔다. 토요일 아침이지만 시즌이 지나서인지 차가 안 막혀 40분 정도 걸렸다. 사나사까진 들어가지 않고 팬션들이 있는 주차장 앞에 차를 세우고 슬슬 걸어 올라갔다.
일주문까진 10분 정도 걸었는데, 길 옆으로 사나사에서 일정 간격으로 걸어 놓은 작은 현수막 몇 개가 절을 찾는 이들과 등산객들을 맞아주었다. 나무 기둥 사이에 나즈막히 걸린 현수막엔 딱딱하고 고압적인 산행 주의사항이 아니라, 한글 붓글씨로 싯구절처럼 보이는 운치 있고 격조 높은 말들이 한 줄씩 적혀 있었다.
어느 때인가 우리는 나무였고
어느 때인가 우리는 꽃이었고
어느 때인가 우리는 바람이었고
어느 때인가 우리는 씨앗이었고
지금 … 여기 … 이 순간
지금까지 내가 산에서 봤던 어떤 현수막보다도 운치와 격조와 감성과 낭만이 넘치고 멋스럽기까지 했다. 현수막마다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사나사라고 써 놓은 걸로 볼 때 스님의 작품 같은데, 산을 알고 인생을 아는 이 같았다. 메시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지 않고, 가르치려거나 강요하지 않는 멋과 자유와 내공 그리고 여백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느껴지면서 깊은 심호흡 한 번 해 주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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