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방앗간 풍경
Posted 2014. 11. 22.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홍성에 간 이유는 처외사촌오빠를 만나 회포를 푸는 거였지만, 미션은 농사 지은 쌀과 고춧가루 그리고 들기름을 짜 오는 일이었다. 고구마와 모과가 덤으로 차에 함께 실려왔고, 방앗간에서 파는 10kg 흠집 사과(2만5천원)까지 수확이 많았다. 고춧가루는 미리 빻아 있어서 들깨를 싣고 홍성 읍내에 있는 방앗간을 찾았다.
방앗간에선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말린 고추를 가져오면 왼쪽부터 차례로 부어 오른쪽으로 올수록 곱게 빻이는 기계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한두 번 다라이를 들어서 붓고 잘 내려가도록 막대로 가끔 쑤셔주는 것 말고는 자동으로 처리됐다. 본격적으로 빻기 전에 고추씨만 따로 분리되는 것도 신기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방앗간에선 들깨를 가져오면 들기름을, 참깨를 가져오면 참기름을 짜 주는데,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맘때 이 동네에선 거의 들기름 작업이란다. 밭에서 타작한 들깨는 씻어 말려 가져가는데, 우리가 가기 전에 이모님께서 미리 수고해 주셔서 옮기기만 하면 됐다.
깨를 부어 볶고 압착기에 넣고 짜는 과정은 타이머에 맞춰 진행됐는데, 주인은 울리는 소리에 따라 고추 기계와 깨 기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오랜 경력자들이 그렇듯, 한 치의 오차 없이 착착 해 냈다. 짜낸 기름이 좁은 관을 따라 흘러 모아졌고, 통 속엔 납작하고 단단한 원통형 깻묵 덩어리만 남게 된다.
압착해 짜낸 기름은 거품 때문인지 윗 부분이 우윳빛을 내며 걸찍했는데, 아래에 통을 받친 다음 한 번 더 밀어내면 우리가 먹는 들기름이 된다. 바닥에 끈적하게 남은 기름까지 페인트붓으로 가운데 구멍을 통해 쓸어내린 다음엔 정교한 수작업으로 소주병에 옮겨 따르는 마지막 공정이 기다리고 있다. 동생들이 가져가기 편하도록 박스째 사 놓고 마셔 깨끗이 비워놨다는 사촌오빠의 넉살에 다들 배꼽을 잡았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고, 비싼 들기름을 깔대기를 대고 병에 옮겨 붓노라면 자칫 흘러 넘칠 수도 있는데, 방앗간 주인 아저씨는 이 방면의 달인(達人), 아니 장인(匠人)이셨다. 이 양반 사전엔 한 방울이라도 허투루 흘러내리는 기름이 없다는듯 완벽하게 눈대중으로 붓고 팔힘과 스냅으로 끊어 한 번 흔들어 주면 정확하게 목까지 맞추는 일이 반복됐다. 그것도 거의 쉴틈 없이 스피드하게!
들깨 8kg를 짜니 소줏병으로 8병 반이 나왔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반 병이 더 나온 건 다 이 달인 덕분이다.^^ 우리보다 앞서 화성 작은 언니네 걸 했는데, 두 집 다 거의 비슷하게 짜내고 따르는 신공을 보였다. 세 병은 괴산 갈 때 가져가 동생네 주었다.
방앗간 한 구석에선 떡이 쪄지고 있었다. 어느집에서 맡겼는지 백설기 몇 판이 뜨거운 김을 내면서 나와 적당한 크기로 썰려 비닐 봉투에 담겨지고 있었다. 갓 쪄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 한 덩이를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명절 대목엔 줄이 엄청 길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온동네 수다도 떨고 장기도 두고 졸기도 할 것 같은데, 맞춤떡 공임표가 업소용 냉장고 앞에 붙어 있어 시세를 짐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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