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
Posted 2014. 12. 2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토요일에 하던 주말 산행을 오전엔 전 날 못 본 <미생> 보느라, 오후엔 마트 갈 일이
생겨 못하고, 주일 아침으로 미뤘다. 눈이 쏟아진다든지 또 다른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건너뛸 요량이었는데, 다행히 큰 눈이 오진 않았고, 주일 아침에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는지라 꾸물거리지 않고 일어서기만 하면 갔다올 수 있기 때문이다.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긴 했지만, 밖은 아직 어둑해 조금 밝아지길 기다리다가 7시쯤
나섰다. 물병 대신 작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내려올 때를 대비해 아이젠을 챙겼다.
스틱은 가져갈까 하다가 아이젠을 믿고 그냥 두고 갔다. 털모자를 쓰고 온다는 걸 깜빡해
겉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고 걸으니 중간부터 목 뒷쪽이 조금 뻣뻣해지는 느낌이다.
낙엽송 지대와 쉼터를 지나 타박타박 한 시간쯤 걸려 곱돌약수터에 이르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플라스틱 바가지가 여럿 걸려 있고, 눈 위에도 몇 개 놓여 있다. 검단산이
등산객이 많은 산이기는 해도 샘물 하나에 이렇게까지 바가지가 필요한가 하겠지만, 등산을 해 본
이들은 물을 아직 뜨진 못해도 한여름 땀 흘리면서 올라와 줄서서 빈 바가지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기대감에 갈증이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는 걸 안다. 금이 간 거울은 아직 그대로인데,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헝클어진 머리 한 번 손으로 빗어 넘기는 용도니까 별 지장은 없다.
그 옆 온도계는 빨간 막대가 15도에 서 있다. 물론 마이너스, 그러니까 영하 15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른 아침 시간대라 기온이 많이 내려가 있는데, 산 아래는 -10도쯤 됐을 것이다. 안 보고
올라가는 건데, 기온을 확인하니까 조금 더 추워지는 기분이다. 해가 뜨면 한 시간에 1-2도씩
끌어올려 한낮엔 0도에서 -5도 사이에 자리하다가 다시 슬슬 미끄러지기 시작할 것이다.
영하 15도인데도 이곳 곱돌약수터는 아직 얼지 않았다. 10년 넘게 이 산에 오는 동안
이곳 샘물이 얼은 건 딱 한 번 본 것 같다. 흐르는 힘이 팔팔해 얼지도 않고 한여름에도
차갑기 그지 없는데다가 맛까지 좋아 누구나 좋아하는 샘물이다. 돌로 만든 물대야에
흘러 넘친 물은 수로를 따라 흐르다가 반대쪽에 만들어 놓은 커다란 네모 물받이에
담겨 한여름 흐르는 땀을 허푸허푸 세수로 식혀주는 데 그만이다.
샘물 위 눈 위에 누군가 물 한 바가지를 떠 놓았는데 완전히 얼진 않고 사르르 살얼음이
얼었다. 온도 측정용은 아닐 테고^^, 새벽 일찍 올라온 이들 가운데 자신과 산객들의 안전을
비는 마음으로 떠 놓은 일종의 정한수(靜寒水)인데, 민간 또는 무속신앙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저 산객들이 적당한 곳에 돌 하나 올려 놓기 시작해 돌탑을 쌓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곱돌약수터의 다섯 친구 (2/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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