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냉면
Posted 2015. 12. 2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성탄예배를 마치고 가을부터 교회 근처 학사(學舍)에 나가 살고 있는 g와 점심을 먹자고 하니 뜻밖에도 우래옥 냉면을 먹잔다. 오잉~? 한겨울에 냉면을 먹자는 것도 그런데, 젊은애가 우래옥엘 가자니 냉면맛을 언제 익혔을지 신기했다. 하긴 냉면을 좋아하긴 해도 유명한 집 찾아다니진 않는 우리완 달리 여기저기 맛집을 다니다가 맛을 들인 모양이다.
네비게이션에는 주교동이라 나오는데 방산시장 못 미쳐 을지로4가 좁은 골목으로, 공휴일이라 그런지 2시쯤 갔는데도 골목부터 십여 대의 차가 주차 대기중이었고, 한참을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겨우 차를 대고 들어가니 다시 이름을 적고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우리 둘이 왔다면 벌써 차를 돌려 다른 델 갔을 텐데, 녀석, 눈치를 챘는지 괜히 차 돌리지 말고 기다리잔다. 음~ 어느새 나와는 다른 족속이 되어 있었다.
1946년에 문을 열었으니 꼭 70년이 된 우래옥(又來屋)은 한자 이름 그대로 또 다시 오고 싶은 집이란 명성과 아우라를 지닌 대표적인 평양냉면집이다. 의정부 평양면옥, 을지면옥, 방이동 봉피양, 을밀대 등과 전통 평양냉면 맛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데, 메밀면발과 육수맛 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약간씩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피난 온 실향민들의 소울 푸드이다 보니, 이북 출신의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많이 찾게 마련이라 입구에 다른 데선 보기 힘든 <이북5도신문>과 <5도민신문>이 스탠드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지금 북한에선 양강도, 자강도 등 다른 지명을 쓰지만, 분단 이전의 전통적인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 그리고 황해도를 고향으로 둔 분들이 점점 연로해지는 터라 이런 신문들이 언제까지 나올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자리를 안내 받아 냉면 세 그릇을 시키고 기다리자 5분쯤 뒤에 두툼한 사발(沙鉢)에 담겨 나왔다. 면발은 일반적인 냉면에 비해 훨씬 굵은 편이었으며, 베물으면 쉽게 끊어져 메밀의 함량이 제법 되는 것 같았다. 편육 서너 점과 살짝 익은 배추김치와 채 썬 배가 고명으로 얹히는데, 아주 넉넉하진 않아도 한끼 식사로 적당한 양이었다. 맑기만 하기보다는 약간 걸죽한 느낌도 드는 진한 고기 육수에선 약간의 향내가 났는데,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적당했다.
전통 방식의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본 이들의 상당수는 이도 저도 아닌 약간 슴슴하고 닝닝한 맛에 당황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지난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냉면이란 북한식 재료에 이 동네 저 동네 맛과 간이 섞이면서 맛의 전이(轉移)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지나친 비유가 되겠지만, 나를 포함해 대부분 분식집 입맛을 갖고 있는데, 영 딴판인 본연(本然)의 맛을 분간할 미각이 이미 상당 부분 사라져 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냉면은 북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겨울철 제철 음식인데, 그 동안 크리스마스에 먹었던 다른 음식들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값은 만2천원을 받는데, 만원 정도에 주면 좋겠지만^^ 이름난 음식점 가격에 비춰볼 때 못 지불할 가격은 아닌듯 싶었다. 150g 1인분에 3만원을 받는 이 집의 불고기 값에 비하자면야 그런대로 수용할만 했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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