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 보이지만
Posted 2018. 3. 1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모락산 올라가는 초입 텃밭에 두 사람이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점심 때인지라 곧 마치고 돌아갈
요량인지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30여분 뒤 내려오면서 보니 이미 철수한듯
사람은 없고 말랐던 땅이 흙색을 띠고 가지런히 갈아져 있었다. 슬슬 올해의 농사를 시작할 건가 보다
하고 내쳐 내려오려는데, 작은 밭 한 귀퉁이에 알림판을 써 놓았다. 날이 풀리면서 그새 씨를 뿌리고 간
모양인데, 누군가가 무심코 밟고 다닐까봐 짧지만 소중한 메시지를 남겼다.
"씨 뿌렸어요" 몇 자 안 되는 간단한 내용이지만, 밭주인에겐 노심초사 공을 들인 밭이 허무하게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신경써서 남긴 간절한 호소였다. 한 자 한 자 공을 들여 쓴 게 혹여라도
비에 젖을까 바람에 날릴까 비닐에 넣고 돌로 눌러 놓은 게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무슨 채소의 씨를
뿌렸는지는 한두 주 지나면서 흙을 뚫고 삐죽 정체를 드러내는 녀석을 보면 알게 될 텐데, 다른
사람들에겐 사소해 보이지만 메시지를 남긴 이에겐 절실한 호소였다.
간절한 부탁 (9/25/16) 경고판 두 개 (4/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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