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Posted 2019. 12.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
지하철을 기다리는 몇 분 안 되는 무료한 순간엔 별 의미 없이 걸음을 옮기면서 광고판을 응시하거나, 문앞에 기다리는 행렬이 되어 이어폰으로 팟캐스트 듣던 걸 듣거나, 아니면 플랫폼 스크린 도어에 새겨 놓은 시들을 한두 편 읽곤 한다. 등단한 유무명 시인들의 작품도 있지만, 서울시에서 가려뽑은 시민 공모작들이 많은데, 실생활과 연관된 좋은 작품들이 많아 가끔 그 중 괜찮은 시들은 사진을 찍어두곤 한다.
언젠가 양재역에서 환승할 때 봤던 시 한 편이 있다. 20대 시절부터 좋아하던 시이고, 서정적인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안 보이나 싶었다. 알고보니 양재역 갈 일이 많지 않았던 내가 못 보고 있었던 거였다. 1927년생이시니 90이 넘은 김남조 시인의 시 가운데 송창식의 노래로 알려진 <그대 있음에>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시로, 조금 과장해 표현하자면 사랑으로 가슴앓이 해 본 이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시가 아니겠나 싶다.
그러고 보면 '편지'라는 시어 또는 시제가 들어간 시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느니라"로 시작하는 유치환의 시 <행복>에도 "우체국 창문 앞에서 편지를 쓴다"는 구절이 나오고, 이해인 수녀 시인도 실제 편지도 많이 쓰셨지만, 같은 제목의 시도 있었던 것 같다. 모르긴 해도 기백 편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인들은 '편지'라는 시어를 존재론적으로 사랑하고 애용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시는 제목부터 맘에 드는데, 그대에게 쓰는~, 부치지 못한~ 등 아무런 수식 없이 담백하게 붙인 제목이 오히려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사랑, 해 보거나 받아 봤을 것 같은데, 시인은 편지라는 시어로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메일과 SNS로 대체된 요증은 거의 또는 전혀 편지 쓸 일이 없어 이런 시도 잊혀져 가는 것 같다. 전엔 사랑시로 이 시를 읽었는데, 지금은 블로거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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