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
Posted 2011. 9. 1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추석이 일러서인지 모락산 산책길에 밤나무가 한창이다. 대개는 아직 더 여물어야
할 것 같은데, 어른 주먹 크기만한 밤송이로 다 자란 놈들도 보인다. 보통은 높은 데 달려
있어 장대 같은 걸로 흔들고 쳐서 떨어뜨리지만, 몇 그루는 요즘 볕이 좋아서인지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 손이 닿는 눈높이에, 또 어떤것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따갈 수
있도록 더 용감하게 허리춤까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등산로치곤 오가는 사람들이 적은 길이긴 해도 이 낮은 자리까지 자신을 드러내는
밤송이들이 사람들의 손을 안 타고 언제까지 붙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 용기가
가상해 높이 달려 있는 것들보다 늦게까지 이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 심리란 게 묘해서 높이 달린 건 도전도 하고 흔들어 떨어뜨리고도 싶지만, 이렇게
할 테면 해보슈 하는 것들엔 의외로 손을 안 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이제껏 밤송이 하나 직접 따본 적이 없다. 밤나무가 많은 곳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밤송이를 만지고 헤쳐서 알밤을 꺼내는 재미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길가에 떨어져 다른이들이 안 줏어간 밤송이 몇 개 줍는 정도였다.
뒤늦게라도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자연스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일부러 시도하진 않을 것 같다. 하긴 명절 때 밤껍질 벗기는 것도 싫어하니 오죽하랴.
추석 연휴 지나 다시 그 길을 걸을 때 이 늘어진 밤송이들이 그냥 남아있을지, 아니면
성급한 누군가의 손을 탈지 모르겠다. 내 바람이야 가을 내내 그 자리를 지키다가 스스로
익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거지만, 워낙 튼실해 보여 그때까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든 가을 산책의 체크 포인트가 하나 새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