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와 해학 - 망월사
Posted 2014. 6. 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종일산행도봉산엔 등산로만 수백 개가 있다는데, 또 하나 많은 게 사찰이다. 어느 코스로 가든지
두세 개씩은 지나가게 되니 얼추 수십 개는 되지 않을까 한다. 저마다 다양한 역사와 전통,
규모를 자랑하는데, 그 가운데 도봉산을 대표할 만한 사찰로 손색 없는 게 망월사(望月寺)이다.
이 절은 일단 신라 시대 때 세워져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규모 면에서도 도봉산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은 볼거리를 자랑한다. 도봉산 주등산로 가운데 하나인 포대 능선
오가는 길목에 있어 찾는 이들이 많으며,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아름다워 블로그들마다
빼어난 풍경을 담고 있어 전부터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본전인 관음전 오른편에 돌계단과 작은 문이 있는데 여여문(如如門)이다. 한자로 써 있는
현판은 흘림체인 행초서라 읽기 어려운데, 오른쪽 첫 자가 같을 여이고, 가운데도 같은 자를
의미하는 점점을 찍어놓았다. 문 이름치곤 독특해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옆에
붙여놓은 동자승 그림이 힌트를 주었다.
아니 오신듯 다녀가시옵소서. 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 중 하나였다. 어느
절을 가더라도 정적을 선호하고 권하지만, 이 그림 전단은 하고 싶은 말을 품위 있게 하면서도
해학과 유머를 담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짓게 만든다. 이런 걸
고수라 하고 내공이라 인정한다.
쪽문만 아니라 이 절의 품위와 해학을 엿보게 하는 구석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정오 무렵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가 시작된 하산길이라 오래 머물며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볼만한 것들이 쉬 눈에 띄었다. 본전 옆 벽면 그림은 마치 판화처럼 보였는데, 잘 그리려
애쓰지도 않고 쉽고 편하게 그리면서도 곳곳에 유머 코드를 심어놓았다.
이런 해학적인 그림을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절이나 교회나 성당이나 짐짓
거룩한 척하면서 가까이하기 부담스러운 성화(聖畵)만 고집하기보다는 이렇게 눈높이를
맞추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림을 보면서 얼어붙게 하거나 당황하게 만들면 재미도
없을 뿐더러 피곤하고 곤란할 것이다.
망월사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사찰임을 보여주는 그림도 고지도풍으로 그려 보는 이들에게
딱딱하지 않고 정감 있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품위와 해학이 있는 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늦가을 단풍이 잘 들 때 이 절만 돌아보고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따로 와야 할 것 같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망월사를 가리키는 이정표에도 품위 있게 사찰 아이콘이 새겨 있었다.
'I'm wandering > 종일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되는 변신 (2) | 2015.06.21 |
---|---|
용문산 8시간 산행 (2) | 2015.06.16 |
얼떨결에 천 미터 넘는 용문산 장군봉까지 (2) | 2014.09.03 |
도봉산 회룡역 코스 (2) | 2014.06.04 |
후퇴도 기술이다 (2) | 2013.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