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8시간 산행
Posted 2015. 6. 1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종일산행
7월 둘째주에 다시 요세미티 백패킹을 하게 돼 전지훈련하는 기분으로 토요일 아침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는 양평 용문산(1157m)을 다녀왔다. 마터호른 닮은 백운봉(940m) 갈 때 차를 두는 사나사에서 출발해 함왕봉(947m)-장군봉(1065m)-가섭봉(1157m)을 한 바퀴 도는 4코스를 탔다.
8시 20분에 오르기 시작해 4시 너머 내려왔으니 중간중간 쉬고 점심 먹고 하면서 꼬박 8시간 종일 산행을 한 셈인데, 시간과 거리는 보통 때 하는 산행의 두 배쯤 됐지만, 피로도와 만족도는 그 이상인 것 같았다. 올해는 어떨지 몰라도 작년 요세미티에서도 하프돔 등정을 빼곤 코스 난이도는 어려운 편은 아니었는데, 이쪽 길로 오르내리는 용문산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코스 안내판엔 4.5km에 4시간 걸린다고 나와 있는데, 시간은 얼추 맞는데 거리가 잘못 표기돼 있었다. 사나사에서 용문산 정상까진 6km는 족히 넘는 거리였다. 룰루랄라 기분 좋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림은 미끼였고, 실상은 지치고 힘이 빠져 거의 정신줄 놓고 터덭터덜 헤매는 사람인데, 출발할 땐 미처 몰랐다.
정상까지 올라야 할 봉우리 세 개 가운데 첫 번째 함왕봉은 백운봉 다닐 때 오른 적이 있다. 사나사 계곡길은 아름답고 울창한 숲길이 계속됐지만 시간 반이 지나도록 능선이 보이지 않고 계속 오른쪽 옆으로 완만하게 오르다가 두 시간 가까이 됐을 때 비로소 함왕봉 이정표를 만났다. 아무래도 이쪽 능선은 초행길인지라 조금 돈 것 같은데, 이미 천 미터를 넘어선 장군봉-가섭봉 방향은 기분 좋은 숲길이 길게 이어졌다.
용문산 주봉인 가섭봉 아래는 용문사를 비롯해 서너 방면에서 올라온 등산객들이 만나는데, 정상까지 백여 미터는 길게 계단이 나 있다. 다리가 후들거려 한두 번 쉬면서 아래로 펼쳐지는 산세를 감상하며 쉬엄쉬엄 올랐다. 정상 옆은 군부대인지 통신 시설인지 철조망이 어지럽게 쳐 있어 한쪽 경관을 막고 있지만, 그래도 고도가 있어 내려다 보는 전망이 볼만 했다.
동네산 다니는 것보다 긴 산행을 예상하며 물통도 500ml 두 개를 준비했는데, 약수터 하나 없는 긴 코스에 아주 요긴했다. 여름 종일 산행에 1리터는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아주 무덥지 않았는데도 정말 스파클링한 맛을 내면서 중간중간 힘을 내게 했다.
아침도 거르고 점심으로 빵칼로 자른 베이글 하나와 치즈, 사과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연어마요 작은 캔 하나를 넣어가서 정상을 밟은 다음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어 사과와 함께 우걱우걱 베물어 먹었다. 이런 시간, 이런 상황에선 뭘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서둘러 먹어 치우려는 공복과 남는 게 줄어드는 아쉬움 사이에서 시카고나 웰링턴 베이글 잘한다는 집 못지 않은, 잊을 수 없는 맛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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