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모자 푹 뒤집어쓴 배추밭
Posted 2015. 12. 1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지난주에 내린 눈으로 등산로 초입에 있는 텃밭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배추들이
온통 눈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다. 김장용으로 심은 모양인데, 김장철이 됐지만 날이 아주
추워지진 않아 아직 안 뽑고 남겨둔 모양이다. 한창 자랄 때에 비해 거두기 직전의 배추는
옆으로 퍼지기도 하면서 오먕새가 그리 이쁘진 않은데, 흰눈으로 덮이면서 그냥 보면
배추밭 느낌이 안 날 정도로 푹 잠겨 있다.
나란히 서서 눈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배추들은 머리통의 반이 하얀 털모자인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꼬마 장난감이나 추운 나라 병사들을 연상시킨다. 전투병은 아니고,
왜 궁전 등을 지키는 근위병들 있잖은가. 오와 열을 맞춰 꼿꼿이 서서 어떠한 외부 자극에도
미동하지 않고 교대 시간을 기다리는 잘 연단된 꼬마 병사들이 소대를 이루고 있었다.
허리에 찬 벨트가 생각보다 슬림한 걸 보니 확실히 전투병은 아니고, 패션을 중시하는
근위병임이 분명해졌다. 가만히 살펴보니 잘 연단되긴 했어도, 역시 추위엔 장사가 없는지,
몸을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있었고,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서 발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는지 딛고 있는 데가 살짝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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