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팥빙수
Posted 2019. 9. 2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종로 익선동에서 잡은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종로3가역에서 내려 오랜만에 부근 조계사도 둘러보고 가회동 앞까지 둘러보고 왔다. 서울 사람이어도 요즘 도심 풍경은 새롭기만 해서 마치 관광객이나 이방인이라도 된듯 천천히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발바닥이 아파질만 할 때쯤 작은 커피집 1인용 팥빙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곱게 갈린 눈꽃 빙수 위에 아주 가볍게 연유를 붓고 그 위를 봉화에서 재배했다는 국산 팥이 덮여 나왔다. 윈도우에 내건 그림과는 달리 묵직한 놋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다 먹도록 차가운 기운이 유지됐다. 한여름에 먹었더라면 먹은 더위까지 토해낼 만큼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겠다 싶었다. 운현궁이 옆에 있어 궁중팥빙수란 이름을 붙인 것 같은데, 잠시 임금까진 아니어도 궁궐에서 서빙고 얼음을 깨서 만든 빙수를 맛보는 기분이 근사했다.
요즘 커피샵들에서 파는 빙수엔 인절미 조각부터 씨리얼까지 이것저것 들어가는 게 많은데(아예 흑당으로 얼린 빙수도 있다), 이 집 빙수는 단출했다. 별로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서 고독한 미식가라도 된 양 조금씩 떠 먹는 동안 몇 차례 입가에 잔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선반 위에 단정하게 놓여 있는 각종 커피 도구들을 볼 때 이 집 상호 그대로 드링크 세븐, 에브리데이 커피도 어느 정도는 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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