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의 잔잔한 즐거움
Posted 2011. 9.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서너 해 전부터 점심 산책과 주말 등산을 시작하고부터 변화된 일상 가운데 하나는, 놀랍게도,종종 아침이나 점심 가운데 한 끼는 건너뛰어도 될 정도로 시장끼를 느끼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가령 출근해서 사인암으로 점심산책을 하는 날이면 날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상 50분 안팎이 걸리는데, 점심 먹을 시간도 빠듯하지만, 실제로 안 먹어도 별 지장이 없게 되었다.
아침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안 먹고 가도 괜찮고, 오히려 편한 게 몸이 적응이 된 것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마도 살이 빠지면서 느끼는 만족감 때문인 것 같은데, 많이 걷고 덜 먹게 되니까 빠진 체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식욕이 없거나 음식이 싫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누군데 그럴 수 있겠는가.^^
한두 차례 소개했지만, 평소 우리집 아침식탁은 소박하고 단출하다. 신혼시절부터 15년 넘게 맞벌이를 한 관계로 아침을 차리는 것도 일이어서 빵 한 조각에 우유 한컵이 보통이고, 가끔 햄치즈 샌드위치라도 나오면 성찬(盛饌)이었다. 그러다가 로즈매리가 전업주부가 되면서 아침메뉴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십 년 넘게 몸에 밴 아침 소식(小食)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제 아침엔 버터 발라 살짝 구운 빵, 군만두와 우유, 사과 두 쪽과 함께 요플레에 복숭아를 듬뿍 넣은 제법 푸짐한 메뉴가 나욌다. 여기에 커피 한 잔까지 하면 아주 든든하다. 주말이 아닌데도 집에서 이렇게 먹으면 점심은 산책으로 대신하는 게 속이 편하다.
네 해 전 잡지 경영 세미나 참가차 LA에 있는 남가주대학(USC)에 갔을 때 세미나장 입구에 그네들로선 단출한 아침메뉴가 차려 있었는데, 도너츠와 머핀, 베이글 가운데 깨가 뿌려진 베이글 하나와 발라먹는 치즈, 완소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하나씩 담고, 역시 맛있어 보이는 과일 몇 조각과 쥬스 한 잔, 그리고 키가 큰 요플레 하나를 집어오면서 "세상에! 이거 너무 멋진 조합 아닌가!" 하며 입이 벌어졌던 생각이 났다.
여러 나라에서 온 남녀 참가자들 가운데 내가 집어온 음식량은 하위권에 속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매일 이렇게 먹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그러면 한 달에 1kg씩 느는 건 일도 아니겠다고. 여행이나 세미나를 가서나 이렇게 먹지, 집에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빵 한두 쪽과 우유 한 잔의 잔잔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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