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er, 어떤 허기
Posted 2018. 7. 31.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나쁜 페미니스트』(9/3/16)로 알려진 록산 게이(Roxane Gay)가 자신의 몸과 허기에 대해 솔직 담담하게 기록한 『헝거 Hunger: A Meoir of My Body』(사이행성, 2018)를 흥미롭게 읽었다. 키와 몸무게가 거의 같은 세 자리 숫자(190 정도)일 것으로 추측되는 거구의 몸 - 한때는 놀랍게도 몸무게 앞자리 수가 바뀌면서 키보다 훨씬 많이 나간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 을 지녔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몸을 불린 사연이 있기에 그저 재미로만 읽을 순 없었다.
40대 중반에 이른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유명 작가와 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유복한 가정사와 유망한 학창시절 - 유명 기숙 사립고를 거쳐 예일대학까지 어렵지 않게 진학한다 - 에도 불구하고 소녀 시절 끔찍한 일을 당하고 오랜 기간 방황하다가 글을 쓰면서 자기만의 자리를 잡아 가는 스토리는 전작(前作)에서처럼 치열한 내용과 관계 없이 자유롭고 유머러스해 술술 읽힌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들에겐 쉽게 공감이 되는, 이를테면 이런 대목들이다.
음식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음식은 나를 판단하지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먹을 때는 오로지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45킬로그램이 늘고, 45킬로그램이 더 늘고, 또 한 번 45킬로그램이 늘었다. (140면)
나는 언제나 살을 빼고 싶어 한다. 하루 건너 하루씩 금식도 해 보았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했다. 위를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물만 마시기도 했다. 배고픔을 무시하려고도 해보았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 시도들은 모두 무성의하게 진행되다 무의미하게 끝나버렸다. (247-8면)
편집상 두 가지가 눈에 띄는데, 1번부터 88번까지 제목 없이 번호를 붙여가면서 두세 쪽 분량으로 군더더기 없이 하나씩 짧게 들려주는 스타일은 예부터 독자들도 자주 시도하는 글쓰기 기법으로, 저자가 느꼈을 고통과 관계 없이 읽기 편하다. 요즘 책답지 않개 본문에 사용한 작은 글자는 의도적인 편집 같아 보이는데, 영어책처럼 작은 글자로 책을 만들고 하단에 적당한 여백을 주면 처음엔 다소 불편하지만, 점차 내용에 빠져들면서는 곧 익숙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영리한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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