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경의를 표하시오
Posted 2020. 11. 1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산길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쓰러진 나무들이 보인다. 나무가 작거나 얼마 안 될 때는 등산로 바깥으로 옮겨 놓기도 하지만, 큰 나무가 쓰러져 있을 땐 처치가 쉽지 않다. 통행을 방해하는 곳이라면 톱으로 몇 토막 내 옮겨 놓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그냥 놔 두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 같다. 은고개에서 벌봉 올라가는 엄미리 등산로에도 몇 군데 큰 나무가 쓰러져 길가에 누워 있는데, 그 중 몇 개는 다행히 고개만 숙이면 통과할 수 있어 몇 년째 그 상태대로 있다.
이런 구간은 처음 만날 땐 조심스럽지만, 몇 번 익숙해지면 심심한 산길에서 오히려 즐거워진다. 위로만 솟아 있을 때는 아무래도 지나가면서 건성으로 보다가, 이렇게 옆으로 누워 있으면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 윗 부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뿌리까지 파여 있는 경우엔 나무 전체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리케이드처럼 일단 멈추게 만들고, 산을 계속 올라갈 만 한지 체크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잠시 경의를 표하게 한단 생각도 하게 된다.
이 구간에선 얼추 옆으로 쓰러진 게 서너 그루, 뿌리흙까지 드러내고 있는 게 또 서너 그루쯤 보였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왔더라면 나무 위에 올라서서 좋은 장난거리가 됐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등산로를 이용하는 이들이 별로 없어 굳이 치울 필요를 못 느끼는 게 오히려 좋은 구경거리가 됐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둘 순 없을 게고, 옆으로 치우거나 잘려 옮겨지겠지만, 그때까진 갈 때마다 눈인사를 하고 경의를 표시해 줄 것이다.
2013년 5월 모락산 등산로 (5/26/13) 2014년 10월 은고개 등산로 (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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