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ington Story 11 - 남과 여
Posted 2012. 12. 18.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iwi NewZealand바람 부는 Civic Square 광장 보도에 놓인 등 없는 나무 벤치에 키위 남성 하나가 편한 자세로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고 있던 배낭을 베게 삼았는데, 반팔 셔츠에 반바지에 샌들을 신어 완전한 여름 복장이다. 우린 긴팔 셔츠에 점버까지 걸쳤는데, 막 여름이 오기 시작한 계절을 맘껏 누리려는 모양이다.
양손을 깍지 껴서 배 위에 단정히 얹은 더 없이 고요하고 편안해 보이는 자세였지만, 크게 피곤해서 누운 것 같진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고 등받이나 팔걸이 없는 벤치가 오래도록 긴 잠을 허용할 것 같진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1, 20분 정도 하던 일을 멈추고 도시의 벤치에 누워 눈 감고 생각할 일이 있었거나 쪽잠을 청한 다음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다시 움직이지 않았을까.
누워 있는 이 친구의 귀에 그 흔한 이어폰이 끼어져 있지 않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요즘은 열이면 아홉은 뭘하든 어디서나 스마트폰에 담은 음악 듣기에 바쁜데, 플러그 아웃은 물론이고 라인 아웃까지 감행하면서 그저 도로의 풍경과 소리들, 어쩌면 조금 옆에 있는 바닷가의 파도 소리를 청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여유와 평안이 느껴지는 부러운 순간이다.
벤치 하나 건너에는 보라색 선글라스를 낀 금발 키위 여성이 청년과 비슷한 차림으로 누워 있었는데, 다리를 모아 세운 채 누워서도 뭔가를 하고 있는 게 달랐다.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는 건지, 음악을 고르고 있는 건지 누워서도 시선을 못 떼고 있었다. 뭐 요즘은 다들 자기 전에 누워서 이런 풍경이 대세인 시대가 됐고, 이런 풍경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쉴 땐 그저 푹 쉬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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