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티카의 "십자가 현장"(The Crucifixion)
Posted 2010. 7. 25. 00:14, Filed under: I'm traveling/KOSTA USA휘튼 대학에 있는 빌리 그래함 센터의 전시 공간 마지막 부분에는 십자가 처형 장면을 기록한 대형 그림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원래 이 그림은 폴란드 태생의 화가 얀 스티카(Jan Styca, 1858-1925)의 작품으로 원화는 LA에 있는 포레스트 로운 기념공원(Forest Lawn Memorial-Park)에 있다. 이 공원은 LA 인근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진 대형 묘원으로, 마이클 잭슨이 안장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직전의 정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 이 그림은 폭이 60미터에 높이가 14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이다(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그림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하진 않다). 3년 전에 LA에 갔을 때, 지금은 서울의 한 교회에서 담임으로 있는 대학 시절 후배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좋은 곳이 있다면서 안내한 곳이 바로 이 묘원이었다. 아침부터 묘지를 간다고 해서 의아해 하고 약간 으시시하기도 했지만, 우리네와는 달리 완전히 공원 그 자체였다.
후배는 강당에 좋은 그림이 있다며 어두컴컴한 곳으로 안내했는데, 토요일 아침에 수백 명이 들어갈 만한 극장 같은 곳에 손님이라곤 달랑 우리 둘밖에 없어 긴장했는데, 잠시 후 양쪽 무대의 커튼이 서서히 걷히면서 현존하는 세상 최대의 그림이 나타났을 때의 놀라운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빌리 그래함 센터는 이 작품을 1/5 정도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래도 크긴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이번엔 부분 부분을 좀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파노라마 찍는 기분으로 왼쪽부터 부분 샷으로 잡아 보니 십자가 현장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하나같이 다양한 표정과 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개의 십자가 왼편 사람들은 아마도 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무리로 보인다. 이들은 백성을 사주해 십자가형으로 몰아갔고, 여전히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자세로 논쟁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팔짱을 끼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지켜보자는 사람이나 옆사람과 끊임없이 이 이해가 안 되는 일에 대해 한심하다는 듯이 강변을 일삼고 있다.
이 그림의 중심부엔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환한 빛으로 강조되고 있다. 원근법 때문인지, 아니면 중심인물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흰 옷 입은 예수 그리스도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체구가 크게 그려져 있다. 가상칠언을 시작하는 듯한 거룩한 모습이 돋보인다.
이에 비해 함께 못박힐 두 죄수는 군병들 바로 앞에서 거의 알몸으로 체념한 듯한 표정과 자세로 뒤로 묶여 있다. 이들의 십자가는 이미 땅에 세워져 있고, 예수의 십자가는 박힐 땅이 파헤쳐 있다. 자세히 보면 강도들의 십자가와 예수의 십자가 형태가 다르다.
그림의 우편에는 예수를 따르던 여제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땅에 주저앉아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고, 군중 사이에 안타까운 자세로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은 이미 도망가 그림에서 딱히 찾을 도리는 없지만, 혹시 멀리서라도 숨죽이면서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지르던 예루살렘 백성들은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몰려있지만, 질서를 유지하려는 병사들에 의해 잠시 제지당하기도 한다. 십자가 현장이 골고다 언덕임을 보여주려는 듯 그림의 오른쪽은 경사가 져 있고 멀리 성벽이 보인다.
화가가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중간중간에 어떤 암호나 비밀을 배치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걸 읽어낼 능력이 내겐 없지만, 나는 이 그림의 스케일에 한 번, 디테일에 또 한 번 압도 당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거나 잘 보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훨씬 많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문이지만, 만약 내가 그 당시 살던 사람이라면 이 그림에 나올지, 나온다면 어느 쪽에 어떤 자세로 서 있을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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