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 할머니
Posted 2010. 10. 31.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onderful CapeTown케이프타운에 있는 동안 주일이 두 번 있었는데, 두 번째 주일 그러니까 24일은 로잔대회가 끝나는 날이었다. 대회 기간 동안 한 테이블에서 함께 지내던 이들과의 마무리도 중요했지만, 첫 번째 주일엔 한인교회를 가느라 현지 교회를 가 보지 않고 돌아가는 게 못내 아쉬워 호텔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Central Methodist Church를 찾았다. 150년 정도 된 고풍스런 교회였다.
교회 이름이 중앙(Central)인 걸로 봐서 이 일대에서 제일 오래된 감리교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도 그렇지만 이름 앞에 중앙, 제일 자가 붙으면 왠지 원조 격으로 보인다.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천장이 높고 스테인드 글래스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옛스럽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네와는 달리 교회 밖의 소음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듯, 예배중에도 뒷쪽의 출입문이 열려 있었다.
좌우 벽에는 이 교회와 관련된 인사들을 기념하고 헌정하는 기념비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어 이 교회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지도자들의 면면을 익힐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목회자들만 아니라 평신도 리더들도 여럿 기념되고 있었다.
강대상 위쪽엔 성가대석이 있었지만 성가대를 따로 둔 것 같진 않았고, 아프리카 북인 젬베와 담임목사가 직접 치는 기타와 피아노가 주로 사용되고, 파이프 오르간은 찬송할 때 연주됐다.
10시에 시작하는 예배 전에 조금 일찍 가서 교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마침 옆에 앉으신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청해 오신다. 위니 할머니는 이곳 케이프타운에서 나서 자라고 결혼해 다섯 자녀를 두셨는데, 이 교회에서 자신과 자녀들이 모두 세례도 받고 결혼식도 올렸다면서 올해 90세가 되셨다고 한다.
구순의 어른치곤 매우 정정하셨고, 연륜이 묻어나는 따뜻한 형제사랑(Christian Love)을 보여주셨다. 중앙감리교회의 예배는 평범하고 일상적이었지만, 위니 할머니 같은 분들의 헌신과 기도로 이 교회가 지탱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위니 할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두고 온 어머니와 장모님 생각이 났다.
교회당에 들어섰을 때 앞에서 찬양 인도를 준비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교회 담임인 알란 스토리(Alan Storey) 목사였다. 노타이에 청바지를 입은 편한 차림이어서 영락없는 찬양팀 리더쯤으로 봤는데, 뜻밖이었다. 찬양 중엔 존 덴버의 유명한 팝송을 개사한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부르기)도 있어 흥미로웠다.
담임목사가 찬양 리더를 겸하니까 예배가 스무스하고 자연스럽게 흘렀다. 주보에 순서가 나와 있지만, 별로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인도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차림으론 우리네 목회자들처럼 강대상에 꼿꼿이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설교 시간이 되자 강단을 이리저리 오가며 때론 청바지에 손을 집어넣은 삐딱해 보이지만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꽉 차면 3-4백 석 정도 되는데 얼추 150명 정도가 예배에 참여한 것 같았다. 남아공을 이루는 백인, 흑인, 유색인들이 고루 보였다. 예배 후 교회 앞마당에서 티타임을 가졌는데, 고풍스런 예배당만큼이나 오래돼 보이는 큰나무 그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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