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Yancey
Posted 2010. 12. 14.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QTzine 1월호에 실린 글이다. 새해가 되려면 아직 3주가 남았지만 95년 <복음과상황> 시절부터 월간지 편집과 살림을 하다 보니 늘 한 달 앞서 살아가게 된다. 요즘 내가 읽고 쓰는 소재엔 부쩍 교회 관련 이야기들이 늘었다. 어쩌겠는가. 몸이 서 있는 곳이 그러하거늘,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 거기에 치우치게 된다. 중간에도 나오지만 얀시의 다른 새 책도 읽을 만하다.
출판과 행정이 주업무라 보통 때는 사무실을 지키는 일이 많은데 작년 하반기엔 나들이가 잦았다. 7월 미국 코스타, 10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21년 만에 열린 로잔대회, 그리고 11월 뉴질랜드 코스타에 다녀왔다.
긴 출장은 몸은 피곤하긴 해도 영혼은 고양되는 법. 특히 오고가는 10시간이 넘는 비행기에서 하는 독서는 노곤한 가운데서도 쏙쏙 들어와 영혼의 만족을 누리게 한다. 마침 필립 얀시(Philip Yancey) 책이 배달돼 와 주저 없이 가져갔다. 얀시라면 여행의 동반자로 충분하지.
이번에 나온 책은 처음 번역된 책은 아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전에 낸 책을 정식으로 판권을 얻어 문고판 양장본으로 새로 번역해 냈다. 제목은 살리고, 출판사와 번역자 그리고 책 크기와 표지 모두 바꿔냈다. 한 눈에 봐도 예뻐 보여 갖고 싶게 만든다. 사 둬도 좋고, 선물하기도 괜찮은 책이다. 홍성사에서 요 몇 년간 C. S. 루이스의 책을 정식 계약해 좋은 번역과 디자인으로 독자들을 섬기고 있는 것처럼, IVP도 이번에 좋은 일을 했다.
얀시의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여행 가방에 넣은 것은 작고 얇아 여행에 딱 어울리기 때문.^^ 문고판이라 한 손에 잡고 볼 수 있고, 120면이 채 안 돼 제목과는 달리 별다른 무게감이 안 느껴진다. 대신 읽는 내내 생각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또 다른 무게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 예사 책은 아니다.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Church: Why Bother?, 원서 출간은 1998년)은 백 페이지 조금 넘고 세 챕터밖에 안 되지만, 여느 두꺼운 교회론 책 못지않게 교회 문제로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간과해서는 안 될 실제적인 가이드를 제시한다.
‘나의 교회 방랑기’ 같은 흥미진진한 1장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경험담을 기술하면서 현실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교회를 진지하게 그리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얀시 특유의 글솜씨와 접근법은 웬만한 목회자들은 저리가라다.
대표작이고 널리 읽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 IVP, 1997)에서처럼 얀시는 결국 교회에 대한 고민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새롭게 인식하는 데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최신작 『필립 얀시,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What Good is God, 청림출판, 2010)에서도 줄기차게 은혜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옳다! 은혜가 아니면, 은혜가 없이는 신비로움과 어수선함이 대등하게 공존하는(유진 피터슨의 표현이다) 교회 문제에 대한 그 깊고 난감한 고민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겠는가.
나는 얀시야말로 현대 작가들 가운데 가장 은혜에 천착(穿鑿)하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감히 그의 이름을 은혜 얀시(Grace Yancey)로 바꿔 불러본다.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이방인 팬의 치기(稚氣)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왜 얀시인가? 은혜를 힘줘 말하고 약방의 감초마냥 갖다 쓰는 사람들이 넘치는데. 얀시의 책은 기성 교회가 지닌 상투성을 예리한 문제 의식과 역동적인 필치로 파헤쳐 대안을 모색하는 힘과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신앙 순례 여정에서 그와 교회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은 위선과 문화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교회 회의론자에서 옹호론자로,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바뀌었을까? 중간에 기대치를 낮추거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익숙해진 것일까? 우리 식으로 성령을 받아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교회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13년 동안 다닌 시카고 도심의 라살 스트리트 교회(Lasalle Street Church)에서 교회를 대할 때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고, 안을 들여다보는 4중의 새로운 시각을 배운 것이다. 큐티 체조도 아니고, 이게 각각 뭘 의미하는 건지 궁금하다면 책을 펴서 읽으라.
2장은 교회에 대한 가장 탁월한 은유인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3장은 역설적이게도 고통에 대한 과민성을 길러 주는 교회에 대해 쓰여졌다. 얀시는 교회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사는 우리가 탈진의 조기 증상을 알아채도록 네 가지 위험 신호 점검표를 보너스로 선물한다. 제목만 봐선 알 듯 모를 듯한데, 책을 펴서 읽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1. 나는 사람 자신보다 사람의 고통에 더 관심을 쏟는가?
2. 주변에 내 일을 가치 있게 여기는 공동체가 있는가?
3. 나는 하나님과 삶을 혼동하고 있는가?
4. 나는 누구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가?
독서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마지막에 꼭 받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알겠으니, 딱 한 권만 혹은 저자 한 사람만 찝어 달라는 것. 기껏 균형 잡힌 독서를 얘기했는데 조금 어처구니없고 난감하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시간 없던 관심 내서 책 읽겠다는 게 기특해서 전에는 존 스토트를, 요즘은 유진 피터슨을 많이 추천하는데, 좀 더 실용적이고 읽는 재미를 맛보려는 이들에겐 필립 얀시가 딱이다. 목회자가 아닌 저널리스트의 글은 소재와 글발이 조금 색다른 읽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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