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2 - 추억을 파는 골목 가게들
Posted 2011. 8. 20.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한옥마을 골목길을 타박타박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는데 어둠이 찾아왔다. 골목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는데, 영업은 끝났지만 매장의 불을 밤새 밝혀 두는 곳들이 몇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양복점 춘하추동이었다.
요즘은 양복을 거의 맞춰들 입지 않아 양복점은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다. 나도 24년 전 결혼할 때 소공동에서 양복을 맞췄는데, 며칠 뒤에 가서 가봉하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에 그 길을 운전하면서 지나가다 보니, 그 많던 양복점이 몇 집 안 남아 있었다. 백화점 기성복 코너에 밀려 장사가 안된 지 십수 년이 지났던 것이다.
춘하추동이란 간판이 정겹게 다가왔다. 양복이란 게 사시사철 필요하니까 언제든지 이용하라고 이렇게 지었을 것이다. 2층으로 된 이 건물은 얼핏 보면 일본풍이 살짝 나는데, 한옥마을이 끝나는 골목에 있어 느낌이 묘했다. 가로 간판도 촌스럽지 않게 그런대로 단아한 멋을 냈다.
양복점 건너편엔 작은 점포들이 있는데, 그 중에 방앗간을 하면서 들기름, 참기름, 미숫가루 등을 파는 집이 있었다. 이런 집은 점포 이름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이름이 있으면 오히려 어색하고 그냥 방앗간 또는 기름집이라 부르는 게 모두들 익숙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 가족 이름을 따서 복순네 또는 순천집 정도로 불릴 것이다.
판매하는 품목 글씨 한 번 고색창연하다.^^ 요즘 세대들은 이런 게 뭘 말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일 게다. 무얼 그리 감출 게 있다고 발을 내리고 꽁꽁 감추고 있어 속을 들여다 볼 순 없었는데, 눈여겨 봐 두었다가 올라오는 길에 들기름 한 병과 미숫가루, 여기 표기대로는 미수가루(^^) 한 봉지를 사 왔다.
이런 가게 구경은 언제나 재미지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서울도 이런 가게들이 많았는데, 이젠 웬만해선 이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개발의 혜택과 함께 추억도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다. 전주 여행이 준 선물이다.
'I'm traveling > 하루이틀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주호의 실루엣 (4) | 2011.08.24 |
---|---|
전주 5 - 최명희 문학관 (2) | 2011.08.23 |
전주 4 - 전동성당과 마닐라대성당 (4) | 2011.08.22 |
전주 3 - 담장의 미학 (2) | 2011.08.21 |
전주 1- 한옥마을의 멋스런 간판들 (4) | 2011.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