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4 - 전동성당과 마닐라대성당
Posted 2011. 8. 22.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짧은 전주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전동성당(殿洞聖堂)이다. 아침 반나절 최명희 문학관, 왱이집, 경기전에 이어 둘러볼 수 있도록 다 한옥마을 울타리와 언저리에 있다. 볼 것, 먹을 것, 잘 곳이 모여 있어 하룻밤 여행하긴 딱 좋았다.
호남지방에 선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기도 한 전동성당은 1914년에 지어져 곧 백주년을 앞두고 있는데, 비잔틴 양식의 외관은 물론 내부도 볼만 했다.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내부 열주(列柱)는 8각 석주로, 석주 사이는 반원의 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높고 신기해 보이는 천장과 함께 백여 년 전 처음 본 이들의 감찬탄을 자아내면서 단번에 호남 명소로 자리잡았을 것 같다.
내게 성당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개신교회당에 비해 유독 많은 스테인드 글라스들이다. 전동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온화하고 차분한 게 이곳 사람들의 심성을 반영한 것 같았다. 구석진 곳에 공동번역성서에서 한두 구절씩 따와 보는이들의 생각을 자극했다. 이런 건 교회들이 성당에서 한 수 배우면 좋겠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미덕은 한 바퀴 둘러보기만 해도 흐르는 주제를 책 읽듯 볼 수 있고, 우리같은 천주교 비신도, 초보 방문자들에게 간단하고 쉽게 성경 스토리의 알짬을 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교회 건물들이 잘 못하는 좋은 기능으로, 이곳저곳 성당을 찾을 기회가 있을 때 유심히 보게 만든다.
전동성당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두 해 전 태풍이 심하게 불었던 가을에 세미나 관계로 마닐라에 갔을 때 본 성당 풍경이 떠올랐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카톨릭국가답게 곳곳에 성당이 많았는데, 마닐라 대성당은 나름 규모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본 전동성당과 건축양식이 비슷해 보였다. 오래되고 전통 있는 성당들은 이렇게 짓나보다. 전동성당이나 마닐라대성당이나 건물 외관이나 화려한 내부에 비해 회중석은 참 소박해 보인다. 규모면에서 전동성당이 몇 백 명을 수용하는 중형교회라면 마닐라대성당은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교회지만, 회중석 분위기는 비슷해 보였다.
마닐라대성당엔 스테인드 글라스가 많기도 하고 화려하기까지 했는데, 아마도 문맹이 많았던 시절 그림으로 성경의 주요 흐름을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따갈로그만 쓰던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나 영어, 거기다 라틴어까지 썼을 신부님이나 성경은 이해와 독해가 어려웠을 텐데, 이렇게 멋진 그림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쉽게 이해가 되고 마음을 여는 장치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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