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구경
Posted 2012. 3. 1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졸업하고 특별히 갈 일이 없다가 지난주일 오후 아주 오랫만에 학교엘 가 봤다. 로즈마리가
부활절 콰이어 연습으로 두 시간 비는 사이에 교회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캠퍼스 투어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동안 이런저런 일로 잠깐씩 들린 적은 있지만, 시간을 내서 구경하러 일부러
찾아간 적은 없었다.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했는데, 고색창연한 본관의 위용은 여전했다.
바로 옆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대학원 도서관이 당당하게 서 있는데, 두 석조건물은
학교의 상징이자 존재감이고 자부심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오래된 대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1934년인 이 건물의 설립 시기로 봐서 일본 대학 건물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때 2층 열람실을 애용하던 기억이 났다.
1960년에 일어난 의거를 기념해 1년 뒤에 세웠는데,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로 시작하는
비문은 당시 국문과 교수였던 조지훈 선생이 짓고 일중 김충현 선생이 쓰고, 민복진 선생이
조각했다. 직접 보면 입체감이 돋보이며, 움직이는 것처럼도 보인다. 스크럼은 이 학교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였다.
문과대학 앞마당엔 영문과 연극반의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요즘 거의 보기 어려운
작품 제목이다. 자세히 보니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작품으로 여러 극단이 무대에 올린
나름 유명한 작품이었다. 정기공연 안내와 함게 신입부원을 모집한다는데, 스펙 사회의 요즘
친구들이 연극반에 기웃거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본관이 처음 세워지던 때부터 우리가 다닐 때,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대학 정문과 본관
사이에 자리잡은 운동장에서 입학식과 졸업식, 응원 연습, 축제 등을 했는데, 10여년 전에
이 자리에 지하 주차장과 도서관 등을 갖춘 지하 캠퍼스가 들어서 어째 남의 학교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촌티는 벗었는지 모르겠지만, 옛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적응하기
쉽지 않은 영 생경한 풍경이었다.
본교쪽만 아니라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안암오거리 쪽 이공대 애기능 캠퍼스도 지하 광장을
조성해 놓았고, 전에 없던 건물들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오른쪽의 옛 농대 건물은 겉을 리모델링
했는지, 처음엔 못 알아봤다. 농대 뒤 길 건너에 고대 안암병원이 있고, 지하철도 들어와 있었다.
서문 쪽의 정경대 옆에는 미디어학부의 새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대학 캠퍼스라기보다는
무슨 회사 건물인 줄 알았다. 건물 자체는 화려해 보였지만, 주변과 영 안 어울려 보였다. 아마도
이게 요즘 이 학교의 정체성일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법대와 함께 쌍두마차 격인 경영대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인데, 결국 대통령까지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100주년 기념관은 삼성에서 스폰서링을 한 모양인데, 글로벌 고대를 내세우면서
모금 능력이 탁월한 학교와 넘쳐나는 이윤의 적절한 사회환원 명분을 고른 기업의 필요가 잘 맞아
탄생했다. 이 일로 그 회사 회장에게 명박을 준다고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조금 어울리지 않게 라틴어로 써 놨다. 리베르타스 유스티... 이런! 읽기도 힘들다. 정 외국어
쓰고 싶으면 영어로나 써 놓지. 요금 내는 이들마다 한 마디씩 할 것 같다: LJV, 저게 도대체
뭔 말이라냐?! 영어야, 뭐여. 고대, 얘들 요즘 왜 이런다냐?!
그러고보니 올해가 학부 졸업 30주년이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면서 나를 형성시켜준
모교에 고맙고 잘 되길 바라고 응원하지만, 최근의 행보는 조금 혼란스럽다. 반가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어색함도 숨길 수 없었던 캠퍼스 투어였다. 겉만 본데다 삼월이지만 약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날씨 탓도 있었을 것이다. 신록의 계절에 다시 찾으면 조금 나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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